정년을 맞이한 나의 오랜 벗에게
먼저 자네의 명예로운 정년 퇴임을 진심으로 축하하네.
우리의 인연은 햇수로는 아마 40년이 다 되었네. 참 긴 세월 자네는 경찰로, 나는 선생으로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잘 지내온 듯하네.
자네의 삶에서 나는, 그리고 나의 삶에서 자네는 매우 특별한 존재인 듯하네. 우리는 단 한 번도 의견의 충돌조차 없었다는 것을 보면 조금 멀리 있었나 싶기도 하고, 40년 동안 서로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해온 것을 보면 그 누구보다도 가까운 것도 같다네.
우리가 만났던 그 시절, 8~90년대 매우 날카로운 이념의 시대를 지나면서도 우리는 그 문제로 단 한 번도 대립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자네와 나는 아마도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려는 생각이 강했던 모양이네. 그렇게 서로를 인정한 덕에 우리는 40년 동안의 유대를 유지하지 않았나 싶네.
경찰로 지내온 33년이 이제 뒤돌아보면 아마도 먼지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그 희미함 속에서 한 때는 죽어도 잊지 못할 사건이라 여겼던 것이 기억조차 없어졌음에 놀랄 것이고, 또 아무렇지 않게 지나온 일들이 날이 갈수록 火印처럼 분명해져 오는 사건도 있을 것이라 생각되네.
늘 기억은 과거를 조작하고 그렇게 조작된 과거 탓에 어쩌면 현재가 힘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네. 이제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당장 나부터도 그 경지가 어렵네. 서로 노력해 보아야겠지.
중국의 선승 임제 의현의 이야기로 끝은 맺을까 하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자네는 늘 자네 삶의 주인이었고, 역시 자네는 언제나 진리의 편에 서 있었으니 새로운 삶 역시 그렇게 보내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네.
건강하게 자주 그리고 오래 만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