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Ästhetik

2022년 한 해의 끝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by 김준식

2022년 한 해의 끝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1. 기억



새로운 장소와 자주 가보기 어려운 장소, 또는 특별한 장면이나 상황에 마주하는 현대인들의 자세는 사진을 찍는 것으로 특정 지을 수 있다. 사진이라는 이 획기적인 기술 이전에는 그림이나 기록이었을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처럼 사진기가 범용화 된 세상은 아마 지구상에서 찾아보기 드물다. 국민 대 부분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 폰 탓에 이제 사진은, 일상의 기록을 넘어 어쩌면 기록하기 위한 일상으로 바뀔 만큼 우리 삶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그 사진의 이면에 흐르는 정서는 기억의 저장이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기억의 정지이고 기억의 미화이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기억의 조정에까지 이르게 된다.


영어 Memory의 어원을 살펴보면 산스크리트어 smarati에 연결된다. 이 단어와 같은 어근을 가진 단어는 놀랍게도 ‘사랑’이다. 그리스어에서는 기억이란 ‘생각’이라는 뜻과 함께 ‘유해하다’는 뜻과 심지어 ‘파멸’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기억이란 이런 의미를 두루 포함하는 말이라는 것에 왠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자의 記는 ‘쓰다’로 풀이되지만 破字해 보면 자신을 뜻하는 ‘己’와 말을 뜻하는 ‘言’이 합쳐진 형성글자이다. ‘스스로 되뇌어야 할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또, 憶은 생각으로 풀이되지만 마음 心과 뜻 意로 破字 되는데 이는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여러 생각들 중에서 분명하고 확실한 것을 나타내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기억이란 동 서양 모두 매우 중요한 생각으로서 ‘좋음’과 ‘나쁨’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나에게 2022년의 기억은 어떤 것인가? 불쾌하고 암울한 나머지 분노의 기억이 지배적이다. 물론 가장 최근의 정치현실과 사회분위기 탓이기도 하겠지만 2022년 내 일기 전체를 살펴보아도 그러한 생각이 지배적이다. 정치현실로부터 개인이 너무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 말이 맞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무대가 곧 정치무대이고 숨 쉬는 공기가 곧 정치현실이고 보면 그것으로부터 遊離된 삶은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Suvorov Crossing the Alps in 1799, 495* 373cm oil on canvas Russian Museum 1899


2. 전환


러시아 그림을 본다. 이상하게도 러시아 그림을 보면 우리가 아는 유럽의 어떤 그림보다도 알 수 없는 격정이 있다. 특히 이동전람파의 그림이 더욱 그렇다. 한 해의 끝에 수리코프의 그림을 보며 2023년 새로운 도전을 꿈꾼다.


수리코프(Vasily Surikov, 1848~1916)는 Peredvizhniki(이동 전람파)의 일원으로서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의 대표적 화가이다. 수리코프는 Krasnoyarsk (크라스노야르스크; 러시아 남부 시베리아 예니세이 강 하구 공업도시)에서 우편 국장의 아들로 태어나 1868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Imperial Academy of Arts에서 공부하게 된다. 수리코프는 카자크(우크라이나 일대와 러시아 서남부 지역에서 준 군사적인 자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동 슬라브어를 사용하는 민족집단) 계열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제국의 뛰어난 군인 중 한 명이며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generalissimo(총통 등으로 번역되는 이탈리어 용어로써 모든 장군의 최고 계급을 의미함)였던 수보로프(Alexander Vasilyevich Suvorov 1730~1800)가 1799년 2월 다시 야전 사령관으로 복직하여 오스트리아-러시아 군대의 지휘권을 부여받았고 이탈리아에서 나폴레옹 군을 몰아내기 위해 파견되었다.


[당시 수보로프는 해임된 상태였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수보로프는 예카테리나 2세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에카테리나 2세의 아들이자 러시아의 왕위 계승권자인 파벨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1796년 예카테리나 2세의 사망 이후로 파벨 1세가 황제가 되었고 즉위하자마자 파벨 1세는 수보로프가 자신의 명령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그를 해임했다.]


당시 나폴레옹은 이집트 점령전쟁으로 전투에서 수보로프를 만난 적이 없다. 사실 수보로프는 이 전쟁에서 자신의 경력 중 최악의 경험을 했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승리를 거둔 후 수보로프는 파리로 진군할 계획이었지만 신성로마제국과 러시아 본국에서는 스위스로 가서 거기의 프랑스 군을 몰아내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중간 길목을 지키고 있던 프랑스의 마세나(André Masséna, 1758~1817) 휘하의 80,000명의 프랑스 군에 둘러싸인 수보로프는 18,000명의 러시아 정규군과 5,000명의 Cossacks(코자크 군)로 구성된 병력으로 식량도 부족한 상태가 되었다. 앞쪽으로 프랑스군과 싸우면서 알프스에서 전략적 철수를 하게 된다. 수보로프는 눈 덮인 알프스를 통과하여 전투를 벌였고, 그의 부대는 많은 수의 사상자를 냈지만 결코 패배하지는 않았다. 수보로프 역시 후퇴라고 부르지 않았고, 알프스의 얼음 절벽으로 노선을 선택하고 추위와 굶주림을 극복하여 결국 포위를 피해 16,000명의 병력을 온전하게 유지한 채 라인 강 입구의 쿠어(스위스의 도시)에 도달하였다. 이러한 경이로운 전략적 후퇴 덕분에 그는 Hannibal(카르타고의 명장) 수보로프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말 위에 흰 머리의 수보로프가 보인다.


그 장면을 100년이 지난 뒤, 이동전람파의 화가 바실리 수리코프가 수보로프 휘하의 러시아 군대를 그림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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