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0일(2)

by 김준식

4. 行住座臥語默動靜


참선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본래면목 本來 面目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일상의 생활(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座臥語默動靜)에서 내 몸의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마음의 실체를 보아야 한다.(시심마是甚麽: 이 뭣고?)


의상은 법성게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명무상절일체 無名無相絶一切 증지소지비여경 證知所知非餘境,

이름도 붙일 수 없고 형상도 없어 온갖 것 끊겼으니(라이프니츠의 단자와 개념이 비슷하다.) 깨달음의 지혜로만 알뿐 다른 경계 아니로다.


라이프니츠의 생각을 알아보자.


단자론 11. It follows, from what we have now said, that the natural changes of Monads proceed from an internal principle, since no external cause can influence the interior.

이를테면 단자의 자연적 변화는 내적인 원리로부터 온 것이다. 외부의 원인이 단자의 내부에 작용을 미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의상이 말한 ‘다른 경계가 아니라’는 의미와 멀지 않은 평행선 위에 있다.(다르다고 하자니 비슷하고 같다고 하자니 구체성이 없는 관계) 마음의 모습을 보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것인가?


라이프니츠는 단자의 내적인 원리, 즉 진리를 구분하여 설명한다. 플라톤으로부터 기인한 매우 뿌리 깊은 이원론이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이 기계적 이원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어쨌거나,


단자론 33. There are also two sorts of truths—those of reasoning and those of fact. Truths of reasoning are necessary, and their opposite is impossible; those of fact are contingent, and their opposite is possible. When a truth is necessary, we may discover the reason of it by analysis, resolving it into simpler ideas and truths, until we arrive at those which are ultimate

진리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이성의 진리와 사실의 진리가 그것이다. 전자는 필연적이며 그 반대는 있을 수 없다. 후자는 우연적이고 또한 그 반대도 가능하다. 진리가 필연적인 경우는 분석에 의해 그 근거를 찾아낼 수 있다. 곧 그 진리를 더욱 단순한 관념 또는 진리로 분해해 가면 최후에 가장 기초적 관념이나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


법성게도 理(진리)와 事(사실)를 분리하지만 그 둘은 평등하고 분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일원론적 진리관으로서 순환적 사고의 바탕이다.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 시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

진리의 본체와 나타난 현상계가 한결같이 평등하여 분별할 길 없으니, 수많은 부처님과 보현보살님의 경지로다.


부처와 보현보살의 경지가 바로 의상이 구하고자 했던 본래면목이다. 그 본래면목을 우리는 법성이라 부른다. 그러니 모든 존재는 법성을 지니고 있다. 불교에서 모든 것을 일체一切라 부르고 그것을 역시 '제법(諸法, sarva-dh-arma)'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無常한 존재 속에 불변하는 법성法性이 있다는 것은 언뜻 모순처럼 보이나 이것은 법성에 어떤 구체적 형상이 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추측과 억측에서 비롯된 것이다. 법성은 생멸 변화하는 모든 형상으로부터 초월하여 존재하므로 만약에 어떤 형상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이미 존재와 그 생멸 변화에 일관하여 존재하는 상주 법성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그 법성을 일체 존재와 전혀 별개의 것으로 봐서도 안 된다. 전혀 다른 것이라면 일체 존재의 생멸 변화에 그런 법칙성으로 나타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법성과 존재는 같다고도 할 수 없고, 또 완전히 다르다고도 할 수 없는 불일불이不一不二의 미묘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의상은 이것을 그의 법성게 첫 부분에 ‘법성원융무이상’(법성은 원융하여 두 모습이 없다.)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화이트헤드와 조우하게 된다. 화이트헤드의 경험 이론과 절묘하게 스친다. 화이트헤드는 모든 현실적 존재를 관계적(relational) 존재로 파악하면서 존재하는 그 순간 이미 자신과 타자의 선험을 종합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동시에 존재의 소멸은 이러한 선험이 후속하는 타자와 또 다른 객체로 이어진다고 파악한다. 즉 객체화(objectification)의 과정을 거친다고 인식하였다. (화이트헤드 《과정과 실제; 유기체적 세계관의 구성》 오영환 역, 민음사, 1991년) (계속)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