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Ästhetik

봄! 2개의 그림

by 김준식

봄! 2개의 그림


1. 조선 시대 봄이 오는 길목


2월 중순을 넘긴 이른 봄 오후, 우아하게(어울리지는 않지만) 슈베르트 음악을 들으며 나는 봄을 기다린다. 사실 슈베르트 음악은 별로 우아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의 음악은 대부분 격정적이거나 혹은 애잔하다. 때론 처연하기까지 하다. 그의 피아노 음악들은 나에게 이런 느낌을 준다. 특히 최근에 조성진이 녹음한 Piano Sonata no. 19D. 958도 그러하다.


나보다 훨씬 오래전 이 사람들은 아예 악단과 기생을 불러 놓고 봄맞이를 한다. 상석에 앉은 사람이 장죽을 내려놓고 거문고 소리를 듣는다. 대금과 아쟁은 여기에 흥을 북돋운다. 술상을 봐오는 주모도 음악소리에 반응하여 사뿐 대는 발걸음이 그림에서 느껴진다.


붉은 꽃들이 여기저기서 피어나고 바위 틈새로 초록도 제법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늦은 3월이거나 이른 4월 어느 날, 젊은 벗들과 나이 든 벗을 초대 하여 진한 봄의 흥취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혜원은 우리 그림의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영역을 일궈 낸 인물이다. 천박함과 고귀함이 공존하고 자유로움과 질서가 혼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퇴폐頹廢의 미학도 간간이 느껴진다. 혼란스러운 18세기 조선의 단면일지도 모른다. 전혀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혜원의 풍속화는 마치 17세기 네덜란드 초기 풍속화를 보는 듯하다.


사실 거문고는 독주 악기에 가깝다. 가야금처럼 그 소리가 유려하지 않고 남성적인 울림과 여운을 중시하는 완고한 악기다. 손으로 연주하지 않고 16개의 괘에 걸쳐진 현을 젓대로 연주하는 것이 그 원인이기도 한데 혜원은 그 거문고에다가 대금과 해금에 가까운 악기를 같이 연주하게 만들었다. 그 소리가 서로 조화되는지도 알 수 없고 더불어 봄의 느낌과 어울릴지도 전혀 알 수 없다.


조선 후기 대부분의 백성들은 봄이 오면 걱정이 태산이다. 지난가을 추수했던 식량도 떨어지고 겨우 내 먹었던 구황작물도 동이 난다. 아직 산야에는 먹을 것이 자라지 않는 철이 봄이다. 송기(구)(소나무 속 껍질)나 봄나물, 그도 아니면 냇가에 돌을 들추고 민물고기라도 잡아야 연명하던 철이 이른 봄이다. 양반님네 들이야 봄이 온다고 상춘을 하지만 대부분의 백성들은 아주 멀리서 저 거문고 소리와 대금 소리를 들으며 깊은 한 숨을 몰아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올 겨울 물가에 난방비에 개고생 한 이 땅의 민중들이 오버랩되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가?

신윤복, 지본채색, 28.2 * 35.6


2. 19세기 유럽의 봄


Marie-Rosalie Bonheur(마리 로자이유 보뇌르)의 Labourage nivernais (니베르의 쟁기질) 1849


가로 260cm, 세로 134cm의 비교적 대작인 이 작품은 봄날 쟁기질을 하는 농부와 소의 모습을 생생한 느낌의 토양을 배경으로 하여 묘사한 매우 사실적인 작품이다. Rosa Bonheur(로자 보뇌르)로 불리는 이 화가의 정식이름은 Marie-Rosalie Bonheur(마리 로자이유 보뇌르, 1822-1899)이다. 아버지가 직업적인 화가였으므로 어린 시절 보뇌르는 아버지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그녀는 동물의 묘사에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였는데 이것은 그녀의 다양한 노력의 결과였다. 이를테면 아직 남녀의 차별이 엄존했던 19세기 중엽, 동물을 도축하던 도축장은 여성출입금지지역이었다. 말을 비롯한 동물의 뼈와 근육의 실제 모습의 관찰이 절실했던 보뇌르는 경찰의 허가를 받기 위해 남장을 한 뒤 도축장에 들어가 말과 다른 동물의 뼈와 근육의 모양을 스케치하게 된다. 마치 Leonardo da Vinci(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보뇌르는 세밀하게 동물의 근육과 뼈를 이해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유명한 “Le Marché aux chevaux(말 시장, 1853)”의 역동적인 말들이 그려지게 된 것이다.


이 그림 또한 소 근육의 움직임과 가죽의 세밀한 주름에서부터 소들의 다리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거기다가 쟁기가 지나간 자리의 흙덩이와 아직 일구지 못한 땅의 질감이 마치 우리가 현장에 서 있는 느낌을 준다. 이것은 사진의 선명함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확연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따라서 보뇌르의 그림은 사실주의의 범주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쿠르베의 사실주의보다는 이상적인 느낌이 강하고, 퐁텐블로 숲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바르비종 파의 이상적이고 감상적인 그림에 비해서는 다분히 논리적인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보뇌르는 여성의 사회적 위상에 매우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녀는 19세기말의 페미니스트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New Woman”이라는 말로 표현될 만큼 여성에 대한 인식이 대단히 진보적이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녀는 그녀 스스로 동물해부학을 공부하기 위해 남장을 하고 도축장에 갈 정도로 자신의 성취에 열정을 다하는 여성이었고 이런 사실 때문에 그녀는 다가 올 20세기의 여성의 사회적 공헌과 지위향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녀가 태어난 Bordeaux(보르도)는 프랑스 남부의 비옥한 지역이다. 유명한 포도주의 생산지로서 포도 농업을 주로 하는 곳이다. 이른 봄날 한 해를 준비하는 농부들의 힘찬 쟁기질의 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특별히 이 그림은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역동적인 소의 모습과 보르도 지방 특유의 흑갈색 토양의 생명력이 혼합되어 사실적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강렬한 느낌을 주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더불어 1830년부터 시작된 Louis-Philippe(루이 필리페)의 "July Monarchy(7월 왕정)"의 혼란과는 상대적으로 격리된 프랑스 남부 농촌을 묘사함으로써 보뇌르는 의도적으로 복잡한 파리의 정치 상황으로부터 눈을 돌리려 했는지도 모른다.

Labourage nivernais, 1849. Oil on canvas, 134cmⅹ26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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