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Ästhetik

빨간 지붕이 있는 겨울 풍경

by 김준식
Les Toits rouges, coin d'un Village, effect d'Hiver, 1877. Oil on canvas, 54.5cm x 65.6cm.

Camille Pissarro의

Les Toits rouges, coin d'un Village, effect d'Hiver,

(마을 한편, 빨간 지붕이 있는 겨울 풍경) 1877


미국 출신의 미술사학자인 ‘존 르왈드(John Rewald 1912~1994)’가 1963년에 발표한 ‘카미유 피사로(Jacob Abraham Camille Pissarro, 1830~1903)’ 전기에서 ‘르왈드’는 ‘피사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dean of the Impressionist”(CAMILLE PISSARRO, text by JOHN REWALD, published by HARRY N. ABRAMS, INC., in association with POCKET BOOKS, INC., New York, 1963. 9쪽) 즉, “인상주의 화가들의 어른”이라고 표현하였는데 그 이유로 ‘피사로’의 따뜻하고 인자한 성품과 화가로서의 실력, 그리고 지적인 풍모가 균형을 이룬 점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카미유 피사로’는 지금의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당시에는 덴마크령) 성 토마스에서 태어나 12세 되던 해 프랑스의 기숙학교인 ‘Savary Academy’로 진학한다. 여기서 ‘피사로’는 드로잉과 회화의 기초를 배우게 된다. 17세에 다시 고향인 성 토마스로 돌아온 ‘피사로’는 약 5년 동안 아버지의 상점 일을 도우면서 틈틈이 그림 공부를 하게 된다. 1855년, 그가 25세 되던 해 그는 프랑스로 돌아와 그에게 많은 영향을 준 덴마크 출신의 풍경화가 ‘엔톤 멜비(Anton Melbye, 1818~1875)’의 조수 겸 제자가 된다. 이 시기에 젊은 ‘피사로’에게 미적 영감을 준 화가는 ‘쿠르베’를 비롯해서 ‘도비니’, ‘밀레’, 그리고 ‘코로’ 등이었는데 ‘코로’는 ‘피사로’와 빈번한 만남을 통해 자신의 미적 영감을 전수하게 된다.


겨울날 작은 마을의 붉은 지붕과 언덕을 묘사한 이 그림은 ‘피사로’가 늦은 나이에 결혼(1870년, 41세) 후 잠시 살았던 파리에서 30Km 남짓 떨어진 ‘퐁투아즈’의 풍경이다. 파리 근교 퐁투아즈 지방의 ‘생 드니’ 언덕에 모여 있는 붉은 지붕들과 그 뒤편 붉은 황토 언덕을 앙상한 나뭇가지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인상주의 회화의 특징 중 하나는 대상물의 실제 모습 위에 화가가 그 대상물을 통해 얻은 내부의 미적인 반응이 화학적 결합을 통해 캔버스에 표현되는 것이다. 즉, 대상물이 화가의 미적 경험과 내부적인 삶의 철학으로 가공되어 캔버스에 옮겨지기 때문에 화가의 내적인 성향과 철학은 인상주의의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피사로’가 이 그림을 그리던 시절 ‘피사로’의 표현 대상은 주로 산과 들판, 그리고 계곡과 나무가 주종을 이루는데 이러한 그의 화풍은 ‘모네’와 ‘르누아르’, ‘세잔’ 그리고 ‘바지유’와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스며든 자연에 대한 애정이었다.


하지만 ‘피사로’의 풍경화에 대해 당시 대중들은 신통치 못한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에밀 졸라’ 등 당시의 평론가들에게만 극찬을 받았다. 어쩌면 익숙한 느낌과 관점의 퐁텐블로 숲의 풍경화(인상파 회화의 성지)와는 조금은 태도가 달라진 ‘피사로’의 그림에서 아직은 대중들이 적응하지 못해서 생긴 일일지도 모른다.


‘피사로’는 30세 되던 해(1860년) 주류화가들의 데뷔 무대인 살롱전(le Salon)에 전시되었고 1863년에는 비 주류화가들의 데뷔 무대인 낙선전(Salon des Refusés)에도 참여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피사로’는 주류와 비주류를 망라한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피사로’는 ‘세잔’과 ‘고갱’의 스승으로도 매우 유명한데 특히 젊은 ‘세잔’은 ‘피사로’에게 교육받기 위하여 먼 길을 걷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피사로’를 존경하였고 동시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고갱’ 또한 스스로 ‘피사로’의 제자였음을 밝혔을 정도로 ‘피사로’의 회화에 대한 영향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피사로’는 만년에 안질로 뚜렷한 사물의 분간이 어렵게 되자 거리를 조망할 수 있는 3~4층의 호텔 베란다에서 거리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는데 안질 탓이기는 하지만 이 시기의 회화는 오히려 색채의 혼합이 환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겨울 햇살이 비추는 생 드니의 언덕배기에 보이는 땅과 지붕 모두 붉은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과수원의 잎들은 다 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으며 간혹 잎을 떨구지 못한 잎들이 듬성듬성 나무에 매달려 있다. 특별히 그림의 제목에 붉은 지붕(Toits rouges - Red roofs)이라는 것을 표시한 것으로 보아 아직은 비교적 젊었던 피사로의 눈에 비친 초 겨울 햇살의 인상과 그 햇살에 반사된 붉은색 지붕, 그리고 토양의 색채가 매우 강렬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초 겨울의 쓸쓸한 느낌은 거의 없다. 이 그림은 훗날 ‘세잔’의 여러 풍경화에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덕(德)’이 충만하다. 덕이 충만하여 부족함이 없다고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덕’의 사전적 의미가 도덕적, 윤리적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인격적 능력, 또는 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나 행동을 이야기한다.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해 보면 한 존재가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독특한 ‘존재다움’이나 또는 그 ‘존재다움’의 발현 능력을 덕으로 정의할 수 있다. 유가의 철학에서 ‘덕’은 ‘도’와 더불어 모든 논의의 중심이며 그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덕’에 대한 유교 철학에 근거한 이해와 정의는 뚜렷한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장자』 내편 다섯 번째 에피소드 ‘덕충부’는 덕이 사람의 마음속에 충만하게 되면 그 증험(證驗- 실지로 사실을 경험함. 또는 증거로 삼을 만한 경험.)이 밖으로 자연히 나타난다는 뜻인데 덕이 안으로 찬 사람은 밖에 존재하는 자신의 형체를 잊어버리게 되며 이렇게 되어야만 자연의 변화에 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공자’에 의하면 ‘덕’은 “도에 뜻을 두고 덕에 의지한다. (지어도志於道 거어덕據於德『논어』述而)” “덕으로 이끌고 예로서 가지런히 한다.(도지이덕道之以德 제지이례齊之以禮『논어』爲政)”라고 하였고 ‘노자’는 『道德經』에서 “세상의 계곡이 되면 항상 덕이 떠나지 않고, (위천하계爲天下谿 상덕불리常德不離, 도덕경 28장). 덕이 두터운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다.(함덕지후자含德之厚者 비어적자比於赤子, 도덕경 55장)”고 하였다.


그리고 ‘장자’의 덕은 기본적으로 ‘노자’의 덕을 계승하였고 그 의미는 순박한 인간의 자연 본성을 수양하여 지극함의 경지에 이르러 “而游心乎德之和(본성에 조화되어 있는 곳에 마음이 노니는 것이다. 『장자』 덕충부)”라고 이야기한다. ‘장자’에 있어 ‘도’와 ‘덕’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도’와 ‘덕’은 차이가 분명 있다. ‘장자’는 구체적으로 ‘도’와 ‘덕’의 관계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도’가 근본이라면 ‘덕’은 그것을 근거하여 펼쳐지는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장자’는 덕충부에서 불구이거나 기형이거나 못생겨서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할만한 사람들을 등장시키고 그들에게 ‘덕’이 충만함을 이야기한다. 이는 ‘장자’ 특유의 풍자라고 할 수 있으며 일반적인 편견이나 아집을 벗어나야 함을 말하는 ‘장자’적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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