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산책(24)

by 김준식

사람 사는 세상에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문제가 있으니 서로 고민하고 고민의 결과 문제는 해결되기도 한다. 위대하고 엄밀한 변증의 역사다. 하지만 가끔 그 변증의 범위(진폭이라고 해야 하나)를 넘는 문제들도 있다. 살아오면서 더러 겪었고 또 앞으로도 겪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범위를 넘는, 이를테면 변증의 범위라고 인식하는 수준을 넘어 常識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결국 변증으로 귀결되겠지만) 나이 탓인가? 아니면 적응력이 떨어지는 것인가?(결국 이것도 나이 탓일 것인데)


개인적인 문제에서나 내가 속한 집단, 그 사회의 문제 그리고 범위를 넓혀 국가적인 문제에까지 변증의 범위를 넘는, 아니 변증으로 설명해 낼 수 없는 문제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이야 해변가 모래알처럼 많겠지만 그 많은 원인들 중에 하나가 역시 우리의 욕망이다. 욕망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면 내가 아는 것만으로도 몇 날 며칠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의 욕망은 깊고 넓다.


노자의 말씀을 보자.


罪, 莫大於可欲 禍, 莫大於不知足 咎, 莫大於欲得 故知足之足, 常足矣. (도덕경 46장)


“욕심을 내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없고, 만족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화가 없으며, 욕심을 채우는 것보다 더 큰 허물이 없으니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높은 만족이다.”(엄밀하게는 욕심과 욕망은 다르지만 여기서는 비슷하다고 가정하자)


일단 노자께서는 욕심을 내는 단계부터 비난한다. 사실 이 단계는 인간으로서 조금 어렵다. (이 구절은 원전에 없는 것으로 보아 후세 학자들이 말을 맞추기 위해 첨언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다음은 매사에 만족을 강조한다. 이 정도는 보통의 우리도 마음을 잘 정돈하면 이룰 수 있는 경지다. 하지만 이 미친 자본의 시대에는 좀체 다가가기 어려운 경지가 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욕심을 채우는 것인데, 이것은 매우 적극적으로 욕망을 추구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많은 행동이다. 그러나 이 일이 깊어지면 타인에게 위험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매우 위험해진다. '허물'은 곧 '잘못'이고 '잘못'은 '잃음'이다. '잃음'은 '잊음'과 통하니 뒤 돌아보지 못함이다. (이 미친 자본의 역사가 고속열차처럼 폭풍 질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연히 남의 것을 뺏는 짜릿함이 그 동력이다.)


그런가 하면 스피노자 선생은 '에티카'에서 다양한 정서의 정의를 이야기하는데 욕망과 관련된 정서 몇 개를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정서의 정의는 전체 48개가 있다. 에티카 원문, 부크크, 2018. 38~47쪽)


1. Desire is the actual essence of man, in so far as it is conceived, as determined to a particular activity by some given modification of itself.


(욕망이란, 인간의 본질이 주어진 정서에 따라 어떤 것을 행할 수 있도록 결정된다고 파악되는 한에서 인간의 본질 자체이다.)


- 스피노자 선생께서 바라본 욕망은, 인간의 본질에 가까운 것으로 파악했다. 단언하면 욕망은 인간의 본질(essence)이다. 따라서 조건이 구성된다면 사람은 누구나 욕망의 존재다.


우리는 욕망의 존재이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욕망을 경멸한다. 스피노자 선생은 그 점에서 경멸을 이렇게 정의한다.


5. Contempt is the conception of anything which touches the mind so little, that its presence leads the mind to imagine those qualities which are not in it rather than such as are in it.


(경멸은 마음에 거의 닿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한 개념으로, 그것의 존재는 마음으로 하여금 그 안에 있는 특성보다 없는 특성을 상상하도록 이끈다.)


- 이를테면 경멸은 인간의 의지로 조정 불가능한 마음의 모습일 것이라고 스피노자 선생은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거의'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조정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경멸로부터 발생하는 감정 중에 조롱이 있다.


11. Derision is pleasure arising from our conceiving the presence of a quality, which we despise, in an object which we hate.


(조롱이란 우리들이 경멸하는 어떤 것이 우리가 미워하는 사물 안에 있다고 표상하는 데서 생기는 기쁨의 일종이다.)


- 누군가를 경멸하면 자연스럽게 조롱이 이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스피노자 선생은 이미 알고 있었다.


경멸과 조롱의 끝에는 어김없이 분노가 있다. 당연히 분노의 방향은 경멸하고 조롱하는 대상에게로 향한다.


36. Anger is the desire, whereby through hatred we are induced to injure one whom we hate


(분노는 미움에 의하여 우리들이 미워하는 사람에게 해악을 가하게끔 우리들을 자극하는 욕망이다.)


- 요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한 자락이다.


약자를 경멸하고 조롱하는 자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들, 온갖 모함과 속임수로 상대를 교란하여 이익을 취하는 자들…… 마침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분노 앞에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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