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도덕경 산책(23)
나는 비교적 ‘걱정’이 많은 편이다. ‘걱정’이란 안심이 되지 않는다는 말인데, 따지고 보면 맥없이 그저 안심하고 있는 것보다는 조금 나은 측면도 가끔 있다. 하지만 늘 문제는 ‘많다’에 있다. 걱정이 많아서 문제이기는 하다. ‘걱정’과 비슷한 말로 ‘근심’이 있다. ‘근심’은 ‘걱정’보다 약간 구체적이다. 해결책이 없는 일에 대한 마음 씀이 ‘근심’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걱정’보다는 ‘근심’이 많은 쪽이다. 뚜렷한 해결책도 없으면서 그저 마음만 쓰고 있다.
해결책이 없는, 즉 해결되지 않는 일들은 ‘많다’ 또는 ‘적다’로 정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다. 많다고 생각하면 하염없이 늘어나고, 적다고 마음먹으면 이리저리 찾아도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 마음의 모습이 늘 그러하다. 하지만 살아 숨 쉬는 동안 ‘걱정’ ‘근심’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오래전 노자께서도 알고 이러한 사실을 반대로 생각하여 아래와 같이 말했다.
何謂, 貴大患若身 큰 근심을 몸으로 여기라는 말은 무엇인가?
吾所以有大患者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은,
爲吾有身 나에게 몸이 있음이니,
及吾無身, 吾有何患 나에게 몸이 없다면 나에게 어찌 근심이 있겠는가?
노자 『도덕경』 13장
이를 테면 노자께서 바라본 근심은 바로 우리 존재의 이유이자 핵심이었던 것이다. 늘 우리에게 있던 부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걱정’ ‘근심’이 아니라, 노자께서는 ‘걱정’ ‘근심’을 ‘나’라는 존재가 있으므로 해서 생겨나는 자명한, 하나의 사태로 본 것이다. 즉, ‘걱정’이나 ‘근심’에 의해서 ‘나’라는 존재가 확인된다고 노자께서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불교에서 '근심'은 거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반드시 소멸시켜야 할 대상으로 '근심'을 바라본다. ‘잡아함경’에 의하면 마음을 덮고 있는 다섯 가지 번뇌(다섯 개의 덮개, 즉 5蓋라 부른다.) 중에 ‘도회개掉悔蓋’가 있는데 ‘도회개’란 마음이 흔들리고 ‘근심’ ‘걱정’ 또는 ‘후회’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으로부터 벗어나야만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노자의 생각과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노자의 생각은 서양의 ‘인식론’이나 ‘존재론’과 유사한 면이 있다. 이를테면, 노자에 의하면 ‘걱정’ ‘근심’은 존재의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인데 이것은 ‘존재론’의 핵심 주제인 존재의 본질(‘나’라는 존재의~)과 맞닿아 있다. 이 존재의 본질에 대한 생각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그리고 ‘볼프’를 거쳐 ‘쇼펜하우어’에 이르고 다시 20세기에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존재론’을 거쳐 현대의 ‘하르트만’과 ‘카르납’까지 이르게 된다.
아마도 신 학기를 맞이하는 나를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의 마음에는 뚜렷한 해결책 없는 ‘근심’과 ‘걱정’이 많을 것이다. 한 해 동안 부과된 각종 업무로부터 교과 지도, 그리고 사소하지만 중요한 교장, 교감, 그리고 동료 교사와의 관계, 아이들과의 관계……
노자, 혹은 서양 철학에 의하면 그런 걱정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니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 것이며, 다른 한 편으로 불교에서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니 일 년 동안 학교 생활을 통해 조금씩 벗겨내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