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Ästhetik

수묵, 그 심원한 세계.

연규현 전시회를 다녀오다.

by 김준식

1. 수묵水墨의 기원


동양 미술사에서 언제부터 수묵이 사용되었는가에 대한 논의는 매우 다양하지만 대체로 수묵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장자莊子』 외편 ‘전자방’에 등장한다.


“송나라 임금이 장차 그림을 그리려고 할 때 여러 화공들이 모두 당도하여 읍揖을 받고 시립 해서 붓에 침을 바르고 먹을 타며 밖에 있는 자가 절반이었는데 어떤 화공 한 명이 뒤늦게 이르러 느긋하게 종종걸음으로 걷지 않으며 읍을 받은 뒤 서 있지 않고 곧바로 집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지필화묵舐筆和墨(붓에 침을 바르고 먹을 타며)이다. 이 말은 먹(墨)이 이미 그림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舐가 침으로 ‘핥다’라는 의미인데 그림을 그리고 전 빳빳한 붓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예전에 우리 선친도 침으로 붓을 녹이시곤 했다. 화和는 먹을 타다, 즉 먹을 희석하다는 의미인데 지금처럼 아교로 뭉친 고체로 된 먹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 글의 시기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송나라는 춘추시대 송나라로서 송원군의 통치시대는 대략 기원전 531년에서 517년까지였다. 즉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이미 국가에서 수묵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공을 동원하였다는 이야기이니 실제로 수묵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린 것은 그 보다 훨씬 오래전 일일 것이다.


2. 수묵최위상水墨最爲上


6세기경 소역蕭繹(남북조 시대 양나라 4대 황제)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산수송석격山水松石格』에서 ‘수묵화’라는 말이 최초로 등장한 것으로 본다.(통설, 이견이 있음) 하지만 수묵화에 대한 철학적, 혹은 미학적 접근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수묵화에 대한 회화적 미학적 접근이 이루어진 유명한 책은 바로 왕유(왕마힐, 성당 시기의 위대한 시인이자 미학이론가)의 『산수결』, 『산수론』, 장언원(역시 성당 시기의 미술사가)의 『역대명화기』로부터 시작된다.


특히 왕유는 시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였는데 장언원의 『역대명화기』에서 왕유의 작품을 평가하는 이야기를 쓰기도 하였다.


그 후, 수묵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나왔으나 그 이론이 정립된 것은 명나라 시대였다.


명나라 시대 막시룡은 그의 저서 『화설畵說』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림에 있어서의 남북 양종(불교의 남북 양종에 비유하여)도 역시 당대에 분종되었다. 북종은 이사훈(중국 당나라 시대의 화가) 부자의 착색산수(색이 있는 그림)를 말함이고, 화법은 송의 조간 · 조백구 · 백숙 및 마원 · 하규 등에게 유전되었다. 남종은 왕유(왕마힐)가 처음 구작법(사실적 묘사)으로부터 전담법(먹의 농담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사용하였으며, ~.”(동양회화미학, 최병식 지음, 동문선. 2020. 127쪽)


즉 채색보다는 먹의 농담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남종화라고 규정한 것이다. 먹의 농담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화면에 구체적 사물의 묘사는 최대한으로 줄여야 한다. 빈 공간은 사유의 공간이자 초월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남종화에는 빈 공간이 많고 더불어 그 공간에 화제시가 들어가 회화적 표현과 정신적 풍경이 함께하는 형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런 느낌을 동기창(명나라 시대 시인, 화가, 정치가)은 그의 책 『화선실수필畵禪室隨筆』에서 이렇게 말했다.


“요컨대 마힐(왕유)의 화격은 구름에 휘감긴 봉우리와 기암괴석에 천기마저 신비하게 감도는 듯하다. 붓은 자유자재로 거리낌 없으니 마치 조물주의 경계까지 도달한 듯하다.”


왕유 수묵화에 대한 평가인데 왕유 자신 또한 그의 책 『산수결山水訣』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저 그림의 길 중에는 수묵이 가장 으뜸이다. 그것은 자연의 성정性情을표현하여 조화의 세계를 이루며, 혹은 작은 크기의 그림으로서 백천 리의 넓은 경치를 그린다. 또 동서남북이 눈앞에 전개되어 있고, 춘하추동이 붓 끝에서 생겨난다.”(129쪽)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연규현의 그림 견불(2021)을 만나게 된다.


3. 연규현의 그림


(연규현 수묵 풍경전 “옛날 옛날 내가 놀던 작은 동산엔” 2023년 함양문화예술회관 2층)


페이스 북에서 그의 그림을 몇 편 보면서 나는 금세 그의 그림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수묵이 가진 엄청난 공간감과 오묘함이 그의 그림에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치는 않지만 그의 수묵화는 단지 畵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다. 화를 넘어선 심원한 세계가 그의 그림에 분명 있다.

그의 2021년 작 ‘견불’이다.


절묘한 먹의 농담으로 산과 하늘의 경계를 표현했다. 그가 살고 있는 지리산 용유담의 풍경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의 심상 속에 있는 산일 수도 있다. 어떤 계곡도 보이지 않지만 거대한 계곡이 그 속에 있음을 나는 안다. 산 그림자와 미지의 계곡이 만들어 낸 거대한 공간에 새 두 마리가 날고 있다. 작가의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새는 지구상의 피조물 중 유일하게 중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존재들이다. 공기의 흐름을 타고 유유히 공간에 머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새를 그려 놓았다. 자유를 꿈꾸는 것인지 아니면 자유 그 자체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고개지(중국 동진 시대의 화가)가 말한 전신사조傳神寫照(정신이 전해져 그림으로 나타남)의 경지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나무 두 그루와 잡목들, 그 아래로 기암괴석의 천 길 절벽이 불쑥 화면의 왼쪽을 차지하고 있다. 바위 면을 그림에 있어 구륵鉤勒과 몰골沒骨을 절묘하게 사용하여 입체감을 높이는 동시에 그림을 관람하는 우리에게 형태적 상상을 가지게 한다. 그림 속 바위 면을 보며 알 수 없는 형상을 떠 올리려 노력하는 나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온전히 작가의 능력이다.


제목을 견불로 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여기서 ‘부처’의 의미는 절대 자유의 경지일 것으로 추정한다. 거대한 공간이 주는 압도적 풍경 앞에 자유의 경지를 누리는 새 두 마리, 화제인 견불의 이미지와 미세하게 연결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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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조선 시대 화가 이정의 풍죽도(우리나라 오만 원권 화폐의 뒷면 그림)를 넘어서는 '바람(2021)'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작가와 짧은 만남이 아쉬웠지만 또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제 출장길에 마음먹고 들린 연규현의 전시회를 보면서 느낀 소회를 글로 옮겨 놓는다. 작가의 작품세계에 累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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