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Ästhetik

세잔의 자화상과 '애매성'

by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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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1500번째 포스팅이다.


1. 세잔의 자화상


머리 위에 쓴 흰 장식성 모자가 우스꽝스럽지만 옷차림은 盛裝이다. 표정은 매우 근엄해 보이나 어두운 느낌이 없지 않다. 회색으로 잘 정리된 수염으로 보아 주인공은 아마도 중년을 넘긴 나이로 보인다. 자신을 거울에 비추고 그리다 보니 눈동자와 얼굴의 방향은 틀어졌지만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을 주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이 그림을 그린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은 부유한 은행가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엄격한 부친의 강요로 법학 공부를 하기 위해 법과대학(University of Aix –마르세이유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으나 결국 중퇴하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한다. 이런 일 때문에 부친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이 없어지자 평생을 강박관념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살아가게 된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두터운 색조가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그림에서는 희미한 희망의 빛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화가로서의 성공이었는데 그는 몇 번이고 고향 엑상프로방스에 낙향했다가 다시 파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절친한 친구였던 작가 ‘에밀 졸라’와 함께 그는 정치적으로 활발히 활동했으며, 자신을 혁명론자로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작품이 파리 최상층 귀족들이 주요 고객이 되는 파리 살롱전을 통과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결과는 늘 거절이었다. 이런 낙선으로 또 다른 화가 ‘드가’는 우울증에 빠졌지만 ‘세잔’은 이러한 거절을 바탕 삼아 1863년 ‘낙선전’이라는 대안을 마련하고 또 다른 불합격자인 ‘에두아르 마네’, ‘카미유 피사로’, ‘앙리 팡탱 라투르’ 등과 함께 작품을 전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파리 살롱전은 그 뒤 20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그의 그림을 통과시킨다.


인상파(印象派 - Impressionism)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회화운동이다. 신문기자 루이 르루아(Louis Leroy)가 모네의 작품『해 뜨는 인상』(1872,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을 비꼬아서 그들을 인상파라 불렀다. 인상파는 자연 채광을 중시함으로써 기본적으로 모든 작품은 야외에서 제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더불어 밝은 색채를 사용하면서 많은 빛을 받고 공기에 둘러싸여 있는 사물의 인상에 대한 표현을 주로 한다. ‘세잔’은 ‘고흐’, ‘고갱’과 함께 인상파의 중심에 서 있는 화가로서 그의 자화상에서 그가 가진 삶의 여러 모습들은 빛과 거친 터치로 표현하고 있다.


2. 애매성


세잔의 그림에서 우리는 철학적 사유로서 ‘애매성’을 발견한다. 애매성은 인간 중심적인 태도를 벗어나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가치와 물자체를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학적 경향은 세잔 이후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1898~1967)의 회화로 발전한다. 이들 회화를 통한 새로운 논쟁과 발상은 애매성으로 귀결되는데 애매성으로 하여 현대인의 새로운 정신세계와 질서를 이해하는 철학적 해석과 분석이 보다 정교하고 두터워졌다. 때로 애매성은 언제나 나약하고 미미한 존재로서의 인간, 이 세상에서 죽음을 넘어설 수 없는 부조리한 인간임을 깨우치게 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보다 새로운 차원에서 나와 세상 그리고 시간과의 관계를 통찰하고자 하는 철학적 시도가 곧 애매성에 대한 사유의 시작이다. 『레비나스의 타자물음과 현대철학』 윤대선 지음, 문예출판사, 2018. 233~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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