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adox*(逆說)
晴日朝薄霧 (청일조박무) 맑은 날 아침은 옅은 안개,
鑑映而曇天 (감영이담천) 거울처럼 비치지만 흐린 하늘.
道運無所停*(도운무소정) 도는 멈추는 일이 없는데,
獨擾別別願 (독요별별원) 이런저런 생각에 홀로 어지럽다.
2023년 4월 18일 아침 출근길. 출근길에 만나는 월정소류지는 언제나 내 가난한 삶에 영감을 준다. 하지만 약간의 불만이 있다. 쨍한 날씨는 안개가 피어올라 수면이 산이 비치기 어렵고 오늘처럼 흐린 날은 수면에 산이 온전히 비치지만 하늘이 흐리다. 날씨가 좋으면 바람이 불거나 안개가 끼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오늘처럼 공기의 흐름이 없는 날 아침 나는 호수 속으로 온전히 들어온 산을 본다.
* 영어 Paradox의 어미인 – dox는 그리스어 ‘paradoxon’의 어미인 -doxa에서 왔는데 그 단순한 의미는 의견이라는 뜻이다.
다음은 Doxa에 대한 오래전(2017년) 나의 글이다.
만약 나의 의식 속에 현상에 대한 확연하고 분명한 논리체계와 지식(Episteme)이 존재했더라면 현재의 나의 태도보다는 분명하게 진일보한 태도를 취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Episteme의 본래 의미는 'know how to do, understand' 즉 일의 처리 방향과 그 일의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푸코(Michel Foucault)는 특정한 시대를 지배하는 인식의 무의식적 체계, 혹은 특정한 방식으로 사물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기초를 '에피스테메'라 칭했다.(『지식의 고고학』, 미셀푸코, 이정우 옮김, 민음사, 2010. 266~268쪽)
Episteme의 반대쪽에 Doxa라는 단어가 있다. 이 또한 꽤나 어려운 철학적 용어이기는 하지만 쉽게 그리고 일반적으로 풀이하자면 '근거가 박약한 지식'을 말한다. 이 이야기는 플라톤으로부터 기인하는데 한자로는 억견臆見으로 쓴다. 억견이라는 표현이 정확한 해석인지 알 수 없지만 2017년 세상의 풍경은 이 억견을 진리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臆이란 가슴이 답답한 상태를 뜻하는 한자이기 때문에 한자적인 뜻은 Doxa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앞에서 밝힌 것처럼 나 자신의 지식의 범위가 Doxa의 범주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2017년 대한민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이 억견에 사로잡혀 거의 근거가 없는 것들을 진리라 우기고 심지어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플라톤은 객관적 관념론자였는데 그는 진리를 실체로(이데아의 핵심) 인식했다. 위대한 플라톤이 정의한 억견은 이 진리의 반대쪽에 자리 잡고 있는 부정확한 것들이다. 그리고 부정확은 분명하게 진리와 거리가 멀다고 선을 그었다. 물론 지금의 우리는 진리와 억견이 혼재된 세상에 살다 보니 혹시 플라톤이 다시 이 세상에 온다 하여도 쉽게 진리와 억견을 구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 『莊子』 天道에서 차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