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Ästhetik

자식을 삼킨 ‘Saturn’과 ‘Ugolino’

by 김준식

자식을 삼킨 ‘Saturn’과 ‘Ugolino’


“그리스 신화에서 Saturn은 시간과 계절의 순환 과정을 유지하는 힘을 나타낸다. 시간을 의미하는 'Chronos'라고도 불린다. 그가 정기적으로 자신의 자녀를 삼켰다는 이야기는 시간이 계절의 흐름을 삼키고 ‘지칠 줄 모르고’ 흐르는 세월을 상징하고 있다.” (Cicero, Marcus Tullius. 『De Natura Deorum』신들의 본성에 관하여.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Book II, Part ii, § c. 69–70쪽.)


로댕(1840년~1917년)의 수작 중에 ‘지옥문’(Porte de l`Enfer’)이 있다. 이 작품은 '단테'의 『신곡』(Divina Commedia) 중 ‘지옥’(Inferno)을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다.


‘지옥문’의 높이는 6.35미터이고 폭은 3.98미터, 두께는 0.85미터며 무게는 7톤이 넘는다. 이처럼 거대하고 복잡한 형태의 청동 조형물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들의 주조 기술과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따라서 로댕 자신도 30년에 걸쳐 작품을 구상하고 석고형까지는 제작했지만, 실제 청동으로 만든 주조물은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였다.(현재 소장되어 있는 곳은 스위스 쮜리히 미술관)


'단테'(1265년~1321년)의 신곡 중 ‘지옥편’ 중 9번째 지옥, 33번째 노래(이야기)에는 ‘Ugolino’라는 사람이 있다. 9번째 지옥에는 배신자와 반역자, 그리고 맹세를 깬 자들의 지옥이다. 대표적인 수감자는 예수의 제자 가롯 유다이다.


‘Ugolino’(교황당)는 자신의 권력 욕에 눈이 멀어 1288 년에 반대파였던 대주교 ‘Ruggieri’(황제당)와 공모하여 그의 조카인 ‘Nino Visconti’(Ugolino와 같은 교황당)를 축출하고 피사를 장악한다. 하지만 ‘Nino’가 사라지자 대주교 ‘Ruggieri’는 분열로 약해진 교황당의 위치를 감지하고 오히려 ‘Ugolino’를 숙청하여 그의 아들 및 손자들과 함께 ‘Ugolino’를 ‘Torre dei Gualandi’에 가둔다. 그리고 이듬해인 1289년 ‘Ruggieri’는 ‘Ugolino’ 일가를 탑에서 굶어 죽도록 선고한다. 이것도 모자라 열쇠는 피렌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 강에 던져버렸다. 당연히 ‘Ugolino’ 일가는 굶어 죽었다.


'단테'의 신곡 속에는 ‘Ugolino’가 얼음 구덩이 속에서 ‘Ruggieri’라는 사람과 함께 갇혀 있는데, ‘Ruggieri’의 바로 뒤에 ‘Ugolino’가 붙어 그의 뒤통수를 뜯어먹고 머리카락을 한 움큼 뜯어내어 입을 닦으며 방문자에게 과거 이야기를 설명하게 된다는 내용이 나온다.


배신의 증오도 자신을 괴롭히는데 굶주림에 울며 매달리는 자식들을 바라보며 그 마음 얼마나 찢어질 듯했을까! 망연자실한 ‘Ugolino’는 눈까지 멀게 되고 마침내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 자식들을 먹기 시작하는데 '단테'는 신곡에서 이렇게 묘사한다. “배신의 고뇌에도 지지 않던 나도, 배고픔에는 결국 지고 말았다.” ‘Ugolino’의 독백이다.


‘지옥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위쪽 중앙에 자리잡은 ‘생각하는 사람’이다. 턱을 괴고 앉아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인생의 희로애락과 함께 선과 죄악의 틈 사이에서 깊은 고뇌에 빠져있는 사람. 이 생각하는 사람이 어쩌면 ‘Ugolino’ 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초등학교 곳곳에 여전히 세워져 있는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를 상징하고 있는지 몹시 궁금해진다. 아마도 ‘생각하는’이라는 이 말에 집중하여 동상을 세우지 않았을까?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생각이 많은 사람들도 많지는 않은데……

로댕 지옥문 중 생각하는 사람

이 ‘Ugolino’의 모티브는 로댕 이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우선 '미켈란젤로'의 작품 중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예언자 예레미아’(1508~1512)에서 볼 수 있다. 미켈란젤로 임종 후 '바사리'(1511년~ 1574년)에 의해 만들어진 ‘미켈란젤로의 무덤’에서도 이 모티브는 살아있다. 로댕은 어쩌면 이런 명작을 보고 심취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 벽화 예언자 에레미야
바사리 작품, 미켈란젤로 무덤

낭만주의의 대표작이기도 한 '데오도르 제리코'(1793년 ~ 1824년)의 ‘메두사호의 뗏목’(1818~1819)에서도 왼쪽 아래에 죽어간 아들을 안고 망연자실해 있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이러한 모티브가 자리하고 있다.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침몰

또한 '로댕'의 작품에 감명받은 '카르포'(1827년~1875년)는 ‘Ugolino’그의 자식들’(1861)을 만들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카르포 작, 우골리노와 그의 자식들

어찌 되었건 인간의 고뇌를 표시하는 행동, 턱을 괴고 앉은 형상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다양한 영감을 주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