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와 空

by 김준식

無와 空


연휴가 끝나가고 있다. 오전에 산을 잠시 다녀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산길을 잠시 걸었다. 내려오는 길, 만개한 작약 사이 빗방울이 번뇌처럼 반짝인다.

의상의 법성계法性偈 중 한 구절이 생각난다.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 끝 없는 무량겁도 한 생각이요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한 생각도 끝없는 겁이라.


無와 空이라……!



나가르주나(Nagarjuna, 龍樹, 150?-250?) ‘나가르주나’는 용(큰 뱀)을 뜻하는 ‘나가’와 인도의 영웅인 ‘아르주나’의 합성인데 한자로 ‘용수龍樹’라고 번역되었다. 석가모니 입멸 후 600년이 흐른 뒤 나타나서 불교사상을 재정립해 대승불교를 확립시킴으로써 제2의 부처로 칭송되며 흔히 용수보살로 불린다. 원래 ‘나가르주나’는 남인도 바라문 계급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해 다방면에 재능이 있었는데 천문, 지리, 예언 등을 체득했다고 한다.


불교에 귀의한 ‘용수’는 반야경 계통의 ‘공空’ 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시켜 ‘중관’(中觀, Madhyamaka) 사상을 수립하고, 이를 논술한 ‘중론中論’을 비롯해 ‘대지도론大智度論’, ‘십이문론十二門論’ 등의 책을 썼다. 흔히 이 세 개의 문헌을 ‘삼론三論’이라 부르는데 중국에서 4~5세기경에 유행했던 ‘삼론종’이라는 종파의 이름이 여기에서 기인하며, 그의 사상을 계승한 사람들을 ‘중관학파’라고 한다.


‘용수’의 ‘중관사상中觀思想’은 인간 언어 논리의 진실성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인간은 언어 논리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인간 사이의 어떤 교감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부처도 언어 논리에 의존함이 없이는 설법을 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언어가 없었다면 부처의 가르침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즉 완전한 깨달음이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언어라는 수단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인간의 언어 논리에 의한 사물의 변별은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궁극적인 목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수단으로써의 언어나 언어에서 유래된 지식을 우리는 ‘방편지方便智’라고 부른다.


부처가 모든 사람에게 깨달음을 직접 줄 수는 없다. 부처의 말씀은, 깨달음으로 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 것일 뿐, 인간은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부처의 가르침은 깨달음으로 가는 안내판이나 이정표와 같은 것이며, 불교는 그 이정표를 따라갈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방편지’ 없이 깨달음의 길로 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여기에 불교에서 제시하는 여러 가르침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 논리에 의해서 궁극적인 진리의 ‘증득證得’[1]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중관사상’이다. 그리고 그 궁극적인 깨달음의 수단으로 ‘반야지般若智’[2]를 제시한다.


‘반야지’란 ‘근본지根本智’(지식의 본질)라고도 하며, ‘반야지’ 사상은 ‘공空’, ‘중도中道’ 사상과 더불어 ‘중관中觀’ 사상을 구성하는 3대 요소이다. ‘반야지’란 모든 사물의 실상을 올바르게 관찰하는 지혜, 곧 모든 사물의 본성은 ‘공空’으로 보는 지혜이다. 이 지혜는 선정에 의해 최고의 경지에 이른 ‘반야지’로서, 다른 지혜와 구별되는데 이는 곧 ‘해탈’을 의미한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반야지’를 ‘각覺’이나 ‘오悟’라고 하며 ‘반야지’는 깨달음의 수단이 아니고, ‘깨달음’ 그 자체이다.


‘공空’ 사상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 만물에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말로써 ‘공空’이라는 말은 ‘인연因緣’의 바탕이다. ‘용수’는 그의 저서 ‘중론中論’에서 인연으로 생겨난(중인연생衆因緣生) 모든 것은 ‘공空’하다고 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다른 사물들과 서로 얽혀 있는 관계 속에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존재이므로, 그 모양이나 형태, 또는 그 성질이 전혀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저 반짝이는 물방울은 빗물이라는 인연으로 왔고 다시 햇살이 나면 수증기로 화하니 無가 된다. 하지만 無는 본래 형태가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니 空이 더 적절하다. 즉, 본래 물방울이라는 것 자체는 없는 것인데 순간의 인연(빗물)으로 잠시 나타났을 뿐이다. 본래 없는 그 자리로 돌아갔으니 空이라 할 만하다. 하여 因緣으로 생긴 모든 것은 空하다.


[1]증득(證得, 산스크리트어 ‘adhigama’):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는 것 또는 깨치는 것을 말한다.(시공 불교사전, 곽철환, 시공사, 2003.)




[2]반야(般若, 산스크리트어 ‘prajñā’) ‘지혜智慧’로 번역하고, 또는 지智 또는 혜慧라고도 한다.(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