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형이상학과 화이트헤드 그리고 라이프니츠 (4)
-자비, 그리고 공, 무상, 법계
불교의 자비慈悲는 산스크리트어 maitri-karun(마이트리 카룬)이다. 자비는 한자 자慈와 비悲의 합성어이다. 慈는 사랑하는 마음(maitri)을 가지고 중생에게 즐거움, 즉 낙樂을 주는 것이요, 비는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karun을 가지고 중생의 고苦를 없애주는 사랑이다. 이와 같이 자비는 사랑과 연민의 뜻을 함께 포함한 것으로, 이기적인 탐욕을 벗어나고 넓은 마음으로 질투심과 분노의 마음을 극복할 때에만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이 자비는 철저한 무아사상(無我思想 - Self Effacement)을 바탕으로 하여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고 중생의 고통을 제거해 주며, 근본적으로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내는 지극한 사랑이다.
화엄경에 따르면 자비에는 중생을 대상으로 일으키는 중생연衆生緣의 자비, 모든 존재를 대상으로 해서 일으키는 법연法緣의 자비, 대상이 없이 일으키는 무연無緣의 자비라는 3연緣의 자비가 있다. 그중 무연자비가 평등·절대의 ‘공空’의 입장에 선 것이므로 최상의 것이다. 이러한 자비는 반야般若, 즉 지혜와 함께 불교이념의 2개의 큰 기둥이다.
기독교 철학의 여러 줄기 중 ‘과정 신학’이라는 줄기가 있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로부터 유래한 이 말은 기독교 본령에 위배되는 인간과 세계의 진화론적 성격을 강조하여, 신神도 변화해 가는 세계와의 영적인 교류를 통하여 발전해 가는 과정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럼 화이트헤드가 매우 큰 위험요소(기독교 세계의 저항)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리를 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정통주의 신학에 대한 회의, 이를테면 신의 절대적 가치에 대한 염증이었다. 그래서 그는 『과정과 실재』(Process and Reality, 1929)라는 책을 통해 우리의 ‘실재(Reality)’는 ‘과정(Process)이라는 연속선상에 위치하는 것으로서 거기에는 어떠한 조작적 의지도 개입할 수 없으며, 오직 자체적 의지의 변화에 따른 과정들의 연속만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화이트헤드의 화엄형이상학』, 김진, 울산대학교 출판부, 2004. 37쪽.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은 불교의 연기설이나 ‘공’ 사상과 매우 유사한 측면을 갖고 있으며, 특히 그의 존재론적 의미구조는 법계 연기사상과 매우 유사한 측면이 많다. 법계연기의 핵심이 바로 ‘무아(Self Effacement)’다.
무아無我란 거의 불교의 종지宗旨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핵심논리는 바로 어떠한 존재라 할지라도 과정 속에 있으며 마침내 멸滅하여 공空으로 환원되고 그것은 다시 공즉시색空卽是色으로 중중무진되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과 겹쳐지는 부분인데 절대적 신의 개념을 가진 기독교와 상대적이며 물화物化된 신의 개념을 가진 불교의 화엄학이 쉽게 연결되기는 어렵지만 위대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화이트헤드의 노력은 매우 집요하다.
‘화이트헤드’는 중중무진에 다가가기 위해서 '연장적 연속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것은 불교의 법계에 연결된 보편적 상호인과관계를 표상하는 말이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연장적 연속체는 관계 복합체이다.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세계 전체의 기초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화이트헤드’는 다음과 같이 첨언한다. “모든 현실적 존재자는 다른 현실적 존재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연속체의 특정한 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연속체의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왜냐하면 현실적 존재자의 핵심 구조는 현실세계 자체를 대상화하여 그 자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연속체는 존재자들 그 자체이며 동시에 외부이자 내부이다 ” 『화이트헤드의 화엄형이상학』, 김진, 울산대학교 출판부, 2004. 39쪽.
결국 불교와 화이트헤드는 무연 자비, 즉 ‘공空’에서 조우하게 된다. 현실적 존재자들은 연속체의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기 때문에 연속체 전체가 존재의 증거이며 동시에 공空의 증거가 된다. 역순으로 공하므로 무아가 되고, 무아이므로 내 외부가 없어진다. 내 외부가 없으므로 무상으로 이어지며 무상은 법계(불법佛法, 또는 진리. 범어 다르마 다투(dharma-dhatu)가 되는 것이다.
무상無相에서 ‘상’은 망념으로 일어나는 허상이다. 우리들의 생각인 상想이 마음 밖의 대상으로 실재한다고 착각하는 그것이 상相이다. 그리고 무상이라는 것은 ‘상 속에 있으면서도 상을 떠나는 것’이다. 즉 차별상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그 차별상을 공空으로 여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갖가지 차별상과 모든 경계에서 집착을 떠난 것이 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