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시집 달생의 서문을 쓰다.
탁한 공기가 삶을 위협한다.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는 기후위기를 체감한다. 뉴스에 의하면 내일 오후가 되어야 조금 좋아진다고 한다. 참 무서운 일이다.
숨 쉬는 공기가 이러하니 몸이 답답하고 몸이 답답하니 영혼인들 온전할까?
『장자』 외편 ‘達生’의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한다.
“삶의 사정에 통달한 사람은, 어찌할 수 없는 삶을 위해 힘쓰지 않고, 운명의 사정을 달관한 사람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위해 힘쓰지 않는다.”
자칫 해석을 잘못하면 삶과 운명에 굴복하여 자유의지를 잃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自然에 따라 私心을 버리는 태도를 은유적으로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無爲를 삶의 원칙으로 하다 보면 그것이 때로 지극한 有爲가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2023년에는 감히 나의 한시집 이름을 ‘달생’으로 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이런 큰 틀 아래 40여 편의 한시를 이미 썼다. 아마도 올 10월이 오면 지난해와 비슷한 70여 편의 시가 쓰일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달생의 의미는 매우 은유적이다. 2022년 대한민국의 정치 환경이 바뀌면서 세상을 바라보고 그대로 대응하는 것이 괴로워졌다. 하여 좀 더 은유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하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회피일 수도 있다. 이런 방식에 분명 비난이 있을 수 있다. 감수한다.
언제나 이야기하지만 나의 한시에 시적 意境은 없다. 오로지 일상을 유지하며 받는 자질구레한 감정을 문자화시킨 것인데 한글보다는 한자가 압축적이면서 동시에 쓸데없는 감정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 잘난 척도 있다.
한 해의 중간쯤에서 늘 서문을 쓴다. 서문은 앞에 놓이는 글일 뿐, 언제 쓴 것인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은 10월까지 변함없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또 그 변화를 옮겨 쓸 것이다.
새로운 지식은 언제나 새로운 욕망을 잉태하고 새로운 욕망은 또다시 새로운 지식을 낳는다. 2014년부터 단행본으로 만든 나의 한시집이 올해 10권째가 된다. 그 사이 내가 터득해 온 지식과 그로부터 잉태된 욕망과 그 욕망으로부터 파생된 지식을 생각해 본다.
오류와 무질서, 그리고 혼돈으로 가득한 나의 한시들이다. 『장자』'응제왕' 마지막에 등장하는 남해의 '숙'과 북해의 '홀'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