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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n 01. 2023

당랑거철

螳螂拒轍  


당랑거철, 이 이야기는 따지고 보면 참 자조적이다.(고사성어를 풀이한 것을 보면 약간 뉘앙스가 다른데 이것은 이 말의 원전을 곡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淮南子(회남자)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자신의 힘은 헤아리지 않고 강한 자에게 함부로 덤빈다는 의미로 보이기는 한다.) 애당초 되지 않을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自嘲(자조)가 이 이야기에 깔려 있다. 『장자』에 등장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장려면’과 ‘계철’이다. 장려면은 이상주의자다. 그는 왕에게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이렇게 말한다.  


고급 관리였던 ‘장려면’은 왕을 위해 나름의 정치 철학을 이야기하는데 가만히 보면 공, 맹을 따르는 느낌이다. (莊子, 天地) 


必服恭儉(필복공검): 반드시 공손함과 검소함을 실행하고 

拔出公忠之屬而無阿私(발출공충지속이무아사): 공손하고 충실한 사람들을 뽑아 쓰되, 사사로움에 기우는 일이 없다면 

民孰敢不輯(민숙감부집): 백성들이 어찌 화합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한다. 


중용의 其次致曲(기차치곡)이 연상된다. 너무 이상적인 말이다.


2300년 전에도 왕에게 정치적 충고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치, 이를테면 백성=민중들의 뜻을 따르는 일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야 말할 것도 없다. 『장자』에 적혀 있는 글(‘장려면’의 말)이 참으로 새롭지만 동시에 참으로 구태의연하다. (지금 이 나라 고위공직자들의 부패를 생각해 보면 더욱 이 말이 구태의연해진다.) 


그러니까 ‘계철’이 낄낄거리며 대답한다. ‘계철’은 현실주의자고 동시에 상황판단을 하는 사람이다. 아마 ‘장자’ 스스로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若夫子之言(약부자지언): 만약 선생의 말을 

於帝王之德(어제왕지덕): 제왕의 덕에다 비추어 본다면 

猶螳螂之怒臂而當車轍(유당랑지노비이당차철): 마치 사마귀가 앞다리를 벌리고 수레바퀴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이나 같은 것이어서 

則必不勝任矣(즉필불승임의): (사마귀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且若是(차약시): 그렇게 하면 

則其自爲處危(즉기자위처위): (오히려) 그 자신이(사마귀)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계철’의 말인 즉, 웃기는 이야기 하지 말라는 것이다. 왕이 그 따위 이상적이고 한가한 이야기를 듣고 따라 하겠냐는 것이다. 그런 왕이 있었다면 세상 꼴이 왜 이렇게 되었겠냐라고 ‘장려면’을 조롱하는 말이다.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그래가지고서는 정치가 될 턱이 있겠냐? 이 바보 같은 사람아!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분명 비아냥이며 조롱이다. 맞는 말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권력자들은 누구의 말도 귀 담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 특히 아랫사람을 위하는 일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는 존재들이다. 오히려 아랫사람인 우리를 위협하고, 심지어 우리를 저들의 뜻대로 움직이도록 조정하고 통제하기도 한다.  


늘 나는 『장자』 이야기를 할 때면 제발 과거의 일(장자적 의제)을 오늘에 끌어 오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도대체 2300년 전에 일이 오늘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일 가도 매우 의문이지만 설사 적용하더라도 2300년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기괴하며 복잡한 세상에 과거의 일이 제대로 적용될 가망은 영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고전의 향기에 대한 소망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2300년 전 이야기일 뿐인데 지금과 별 반 다르지 않아 자주 내 논리의 모순을 느끼기도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자조적 뉘앙스를 떠 올리며 당랑거철을 생각해 보니 내가 지나온 내 삶의 궤적, 그리고 현재의 내 행동이 혹여 당랑거철의 무모함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슬며시 든다. 오늘도 이 불편한 세상은 나를 흔들어 내 삶을 황폐화시키려 하고, 나는 거기에 사마귀처럼 가늘고 유약한 팔을 다만 이리저리 휘젓고 있을 뿐인가?(현재 추진하고 있는 나의 일을  진행하면서 받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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