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식 Apr 17. 2023

천천히 莊子 읽기

며칠 동안 다시 『莊子』를 천천히 읽었다. 책을 익으며 절망의 시대를 살아낸 인간 ‘장자’와 마주했다. 2300년이 지난 현재도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사람 사는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절망과 좌절만 있지는 않다.    


* 번호는 아무 의미가 없지만 정리하기 쉬운 장점이 있다. 『莊子』책의 순서와는 거의 무관하다.


1.     자연의 세계는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지만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러면서도 커다란 조화를 유지한다. 또한 모든 것이 저절로 충족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은 나름대로 편안한 삶을 즐기다가 생애를 마친다. 



2.     그러나 인간 세계는 혼란과 무질서, 투쟁과 추한 대립만이 존재한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 인간의 지혜가 새나 물고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인가? 군주의 권력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정치가, 군인, 학자, 장사치, 강자, 약자, 부자, 빈자 모두 마찬가지였다. 결국 인간에게 위험한 것은 마음이었다. 



3.     복잡하고 난해한 인간의 마음은 변덕스럽고 불안정하다. 마음만큼 위험한 것도 없는데, 그 마음을 모든 인간이 저마다 다르게 가지고 있으니 인간만큼 위험한 존재도 없다. 



4.     '장자' 또한 '공자'와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의 규범이 되는 도덕의 필요성을 수긍했다. 그러나 도덕규범이 인간존재의 실상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인간마음의 미묘한 사정을 면밀히 통찰하여 만들어져야 하는데, ‘장자’가 아는 한(공자가 만든) 도덕규범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다. 



5.     '공자' 자신이야 금성옥진金聲玉振으로 불릴 만큼 언행 일치하고 권력에 야합하지 않은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공자'가 만들어낸 도덕적 이상주의는 오로지 선택받은 인간, 즉 군자 혹은 지배계급의 가르침일 뿐이다. 더군다나 '공자' 사후 공자학파는 공허한 형식화에 치중하고 정치권력과 야합했으며, 규범과 존재, 이상과 현실의 거리를 망각함으로써 규범이 인간을 속박하는 위선이 되어 인간의 진실한 삶을 위협했다. 



6.     공자학파(유가)들은 권력에 대해 나약했고 무분별했으며 또 변덕스럽고 심지어 매우 위험하기도 했다. 위태로운 마음을 깨닫는데 무심했고, 인간 삶의 복잡함을 무시했다. 



7.     인간의 마음은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험하고 갑자기 변할 뿐만 아니라 끝없는 욕망을 만들고 우주 끝까지 전개시키는 거대한 괴물이다. 하여 ‘욕망’과 ‘지식’은 인간을 매우 위태롭게 한다. 



8.    ‘욕망’은 삶의 본질이다. 욕망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이 부유함, 명예, 권력만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그 욕망은 인간을 타락시키고 파멸시키는 위험한 살육의 칼이 된다. 우리의 안정된 삶이 욕망 때문에 위협받고 손상될 때 그 욕망이 바로 악이다. 



9.     지식의 본질은 현상 세계에 대한 이분법적 법칙이다. 지식은 ‘대롱을 통해 하늘을 보는 것’이고 ‘송곳으로 땅을 찌르는 것’이다. 가치관도 지식의 산물이다. 대상 세계를 분류하고 구별하고 서열화한다. 지식과 가치관의 작용 역시 인간을 타락시키고 파멸시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의 가치기준은 무한한 인간의 가능성을 한정하고 단면화하며, 자유로운 인간의 본래면목을 속박하고 왜곡한다.



10.   지식으로 ‘나’의 시원과 종말, 인간의 재앙과 축복의 필연적 근거 등을 해결하고자 하나 지식의 유한성과 불완전성을 지식 그 자체로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끝없는 모순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인간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죽음은 자기 삶과 세계의 근원에 가로놓인 ‘우연성’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죽음은 필연적이지만 개인에게 죽음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돌발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우연에 가깝다. 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가장 잘 살아가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둔다.



11.   논쟁은 거의 편 가르기로 귀결된다. 대립과 투쟁 속에서 소득 없는 논쟁이 끊임없이 계속된다. 게다가 논의가 아무리 훌륭하고 정밀하더라도 언어로 이루어진 그것은 한계성을 갖는다. 인간의 언어가 가진 한계성은 인간의 언어와 절대 진리 사이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메울 수 없는 틈새가 있다. 도저히 메울 수 없는 틈새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 드러난 모든 것 보다 더 중요하다. 언어와 문자는 그 속에 내재된 의미내용을 전하는 이 목적이다. 그 내용은 성인들의 진솔한 체험에서 우러난 '예지'이다. 하지만 그 '예지'는 언어문자로는 완전히 설명될 수 없다. 책은 단지 ‘옛사람의 찌꺼기’ 일뿐이다. 지식 자체를 위한 지식은 삶의 근본과는 무관해진다.



12.   논쟁자들의 ‘옳다’, 혹은 ‘옳지 않다’와 ‘그렇다’와 ‘그렇지 않다’로 상호부정 속에서 끝없이 순환하고 반복하기 마련이다.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다. 결국 주장하는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 되고 대립은 해결되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장자』다시 읽기를 마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