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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Aug 08. 2023

無邊虛空覺所顯發

무변허공각소현발(無邊虛空覺所顯發)


체온을 육박하는 온도가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다. 아침나절 집중을 하여 뭔가를 보다가도 이내 날씨에 흔들린다. 방학 중이라 홀로 있는 시골 학교에는 매미 소리만 가득하다. 그렇게 8월 초순이 넘어가고 있는 가운데 오늘이 절기 상 입춘이다. 


이런 날, 홀연히 나의 근원을 생각해 본다. 내 삶의 근원이래야 작은 옹달샘처럼 미미한 출발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62년간 이곳저곳의 물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여기서 ‘물’이란 존재는 나의 영혼과 육체를 망라하는 말이자 동시에 그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그 反映들이다.


물은 흐름이다. 흐르는 것은 멈추지 않아야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멈추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잘 다져진 토대와 그 토대의 유지를 위한 시간성이다. 뿐만 아니라 흐름은 유동성을 담보로 한다. 즉, 어떤 것으로부터도 간섭받지 않으려는 물의 본성과 동시에 그 어떤 것도 품어 낼 수 있는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더불어 어떤 모양과 틀에도 반드시 들어찰 수 있지만 스스로 그 어떤 형태로 귀결되지 않아야만 한다. 따라서 물은 화이부동和而不同 그 자체다.  


하지만 유동성이 완벽해질수록 그 속성에 따르는 또 다른 문제가 새롭게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停滯다. 정체란 유동성의 이면이다. 유동하여 움직이는 특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바로 정체, 즉 고임이다. 출구가 없는 웅덩이에 갇힌 물은 반드시 썩게 되어 있다. 물이 내 정신의 흐름을 표상하는 것이라면 그 물이 고여 썩어간다는 것은 곧 내 의식과 사상이 고여 썩어 감이다. 출구가 없는 웅덩이에 고여 있다면 언뜻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물리적이고 실체적인 물은 그러한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정체와 부패에 이르겠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의 모든 것의 반영을 비유한 대상으로서의 관념적인 물이라면 이 정체와 부패가 불가피하지만은 않다. 2600년 전 인도의 부처는 이 상황을 경험하고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어 그의 제자에게 설명하였다. 그 설명, 즉 마음의 정체와 부패를 극복하고 언제나 쉬지 않고 흐르는 물의 본성을 회복하는 방법을 설명해 놓은 경전이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이다.(사실 범어로 된 경전이 없어서 중국에서 만들어 낸 위경이라는 학설이 통설이다.) 줄여서 '원각경'이라 부르는 이 경전은 실천 수행의 체계를 정연하게 갖추고 있는 경전으로서 그 핵심이 바로 무변허공각소현발(無邊虛空覺所顯發)이다. 풀이하자면 ‘끝이 없는 허공으로부터 깨달음이 일어난다’ 정도인데 그 끝없는 허공을 마음으로 보는 것이 원각경의 입장이다. 어쨌거나!


마음의 정체는 그 원인이 마음에 있다. 즉, 마음의 정체를 일으키는 원인을 스스로 제공하여 스스로 정체에 빠지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그 정체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 원인을 찾아내서 없애야 된다는 이야기다. 자명한 이야기여서 언뜻 쉬워 보이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의외로 그 ‘누구나’의 범위는 한 없이 좁다. 따라서 그 원인에 대한 접근방식과 논리는 여전히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궁극의 세계일 수 있다. 꼭 부처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러한 자구 노력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의 삶 내내 이런 노력을 줄곧 기울여 왔고 가끔 봉착했던 수많은 정체에서 어렵사리 탈출했던 경험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마음의 정체와 그 부패는 바로 이 순간 영원처럼 깊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언제나 마음의 모습을 살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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