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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Sep 12. 2023

철오선사께서 원적에 드셨다.

철오선사께서 원적에 드셨다.


1.     행장


지난 6일, 제광당 철오대선사께서 법랍 45년, 세수 77세로 원적에 드셨다. 선사와 인연은 내 나이 16세 되던 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렵던 시절 선사와의 인연으로 거대한 정신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단초가 되었고, 더불어 불우하고 불안했던 어린 내 삶을 잘 추스를 수 있었다. 잠시 선사와의 인연을 돌이켜 본다.


처음 선사를 만나면서 느꼈던 것은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 같은 느낌이었다. 엄격한 선승의 풍모가 나를 압도했다. 하지만 선사께서는 모든 종교의 근본은 어린이라고 생각하셨고 그것을 온몸으로 실천하셨다. 아이들을 만날 때는 한없이 자상한 모습을 보이셨는데 이는 청정한 수행자로서 선사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이 땅에서 어린이 불교의 중흥을 80년대 말, 90년 대 초 경남 함양 안의의 작은 포교당 법인사에서 이루신 것이다. 


여러 해가 지나고 선사께서는 안의를 떠나 지리산 실상사 주지를 맡으셨다. 그리고 한국 불교의 새로운 바람을 위해 선우도량을 여셨다. 지금도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는 불교의 비 이성적 비 논리적 횡포를 철오선사께서는 온몸으로 막아내려 하셨다. 선사께서는 사천에 있는 구룡사에 계시면서 선학원 이사와 원장을 역임하시면서 한국 선 불교를 정립하시고자 온몸으로 노력하셨다. 


이윽고 육신의 병마로 인해 지난 6일 삼천대천세계를 떠나신 선사를 생각하니 구도자의 삶을 살아오신 선사의 삶이 참으로 아름답다.


2.     유지遺志, 그리고 …… 


21세기 자본과 패권, 기득권이 난무하는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종교가 가지는 의미는 “장식성” 그것이 전부다. 그들은 이미 속인들보다 더 완벽하게 부패했고 회생 불능의 경지에 이른 지 오래다. 일각에서는 부처의 초기 경전으로 돌아가 그 청정심을 회복하려 하지만 이미 도를 넘은 부조리한 관행과 자본의 거대한 논리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그 아사리 판에 계셨던 선사의 행적은 놀랍고 아름답다. 언제나 청정한 수행자의 의범을 보이셨지만 속세의 일에도 추상같은 태도를 보이셨다. 선사와 인연이 멀어진 것은 순전히 40대 이후의 내 삶이 곤고 해진 탓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선사로부터 받은 가르침은 항상 내 마음속에 있었다. 


선사의 말씀 중에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많다. 어느 날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세상은 잡놈 투성이다. 잡놈들의 특징은 양심이 없고 수치심이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잡놈 위에 범부다. 범부의 특징은 탐진치에 물들어 사는 중생을 말한다.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릴 수 있다. 이들도 기회만 되면 언제든지 잡놈들 못지않게 염치없는 사람들이 될 가능성이 있다.


현자들은 법을 아는 사람들이다. 비록 경지에 올라서지 못하였지만 자신이 한 행동이 어떠하리라는 정도는 안다. 원인과 결과를 아는 것이다. 불교적으로 말한다면 지금 나를 구성하고 있는 정신이나 물질이 우연히 생긴 것도 아니고, 어떤 가상적인 원인에 의하여 생긴 것도 아니고, 신이 창조한 것은 더욱더 아니고, 단지 전생의 무명과 업, 즉 연기에 의해 생긴 것을 아는 것이다. 


이렇게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가 연기를 아는 지혜이다. 따라서 괴로움과 고통이 될 만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아라한은 현자들보다 한 단계 위다. 즉 괴로움과 고통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고 그로부터 벗어난 존재들이지만 아직 부처는 아니다. 현자와 아라한은 비록 뛰어난 존재들이지만 때때로 범부의 번뇌로 빠져들 우려가 있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요즘(내가 10대 시절) 세상을 보니 잡놈들이 부처같이, 범부들이 아라한처럼, 현자들은 바보처럼 살고 있다. 그런 세상이 지금 내가 살고 있고 또 보고 있는 세상이다. 


지금도 이 말씀은 변함없이 적용되고 남음이 있다. 


이제 삼천 대천 세계를 떠난 선사의 자유로움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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