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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Sep 23. 2023

작은 풀꽃에 대한 생각

작은 풀꽃에 대한 생각


토요일 하루 종일 산 길을 걸었다. 산 길 주위에 핀 작은 풀꽃들을 보며 명철하지 못한 나를 발견한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인간은 저 작은 풀꽃에 비해 너무나 늦게 이 지구에 나타났다. 아주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저 풀꽃 모두가 분명하고 확실한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있으니 나 따위의 판단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지금 이 계절은 고마리, 이질풀, 코스모스, 취꽃, 물봉선 등이 한창이다. 코스모스와 물봉선을 제외한다면 허리를 숙여 잘 보아야 꽃을 제대로 볼 수 있을 만큼 꽃이 작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볼수록 신비롭다. 

양지를 좋아하는 꽃과 음지를 좋아하는 꽃, 강렬한 색을 띠는 꽃과 평이한 색의 꽃. 지금 저 모습으로 나타난 진화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속씨식물(즉 꽃을 피워 씨를 맺는)이 등장한 것이 약 2억 년 전(위키백과 참조)이니 그 긴 세월 동안 이들은 현재의 저 모습을 위해 최선을 다해 진화의 바퀴를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저 모습이 앞으로 2억 년 뒤에 유지될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물봉선은 우리가 화단에 심는 봉선화와 같은 과다. 종, 속, 과, 목 중에서 과가 같으니 인간으로 치자면 거의 같은 종류다. 그런데 물봉선은 물기가 많은 개울가에 피기 때문에 늘 건조한 화단에서는 살 수가 없다. 아마도 언젠가 심한 가뭄에 살아남은 물봉선의 한 종류가 오랜 진화를 거쳐 물가가 아닌 화단에 살 수 있는 현재의 봉선화가 되었을 것이다. 


1859년 11월 영국의 출판사 존 머레이사에서 출판한 On the Origin of Species종의 기원은(찰스 다윈 지음)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지식의 틀을 제공했다. 이 출판사의 창립자였던 존 머레이는  에든버러 태생의 왕립 해병대 장교로서 최초로 문학잡지(English Review)를 펴 낸 이후 그의 아들인 존 머레이 2세 때 제인 오스틴의 책을 출판하여 유명해진 출판사다. 그 뒤 저 유명한 바이런과 출판계약을 맺으며 성장하게 된다. 존 머레이 3세 시절에 종의 기원을 출판하게 되는데 이후 거의 수 십 년 동안 이 책은 과학, 철학, 종교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헉슬리의 강력한 지지에 힘입어 진화론은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출현과 발전의 강력한 중심이론이 되었다. 

다시 작은 꽃으로 돌아와서 보니 정말 많은 고마리들이 폈다. 여뀌 속에 속하는 고마리는 자세히 볼수록 미묘한 아름다움에 빠져드는 꽃이다. 완전히 흰 고마리로부터 꽃 잎 끝이 붉은 고마리가 있는데 보기에는 붉은색이 있는 고마리가 더 예쁘다. 하지만 2억 년의 진화 과정에 있는 저 작은 풀꽃에 대하여 이제 겨우 100만 년도 되지 못하는 인간인 나의 관점은 참 덧없어 보이기는 한다.

가을이 깊어지니 곡식이 영근다 우리가 먹는 벼의 이삭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처져있다. 혹자는 저 모습을 보고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표현을 하는데 나는 그 의견에 늘 회의를 품는다. 왜냐하면 쌀의 이삭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삭의 목은 그들의 진화기제에 따라 가늘어졌고 이것은 좀 더 정확하고 분명하게 자신의 형질을 보존하려는 벼 진화의 결과물이다. 즉 익자마자 땅에 볍씨를 떨어뜨릴 계산으로 목 부분이 가늘어지게 된 것이다.(이견 있음) 함부로 거기에 인간의 주장을 붙이기에는 곤란한 부분이 있다. 필요에 의한 일을 결과로 뭉개고 퉁쳐버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본다.          


오늘 하루 22km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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