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景
眞宰無損益*(진재무손익) 진리는 더함이나 잃음이 없으니,
到底不得候 (도저부득후) 그 조짐조차 알 수 없네.
與物相廢靡 (여물상폐미) 세상사 함께 부서지고 얽히듯,
萬物在靈附 (만물재영부) 만물은 정신과 부합되는데.
2023년 9월 18일 오전. 이제 3주째를 맞이하는 새 학교 교문이 조금 익숙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것이 낯설다. 아침 교문지도를 하면서, 지나가는 대부분 선생님들이 차창을 내리지 않는다. 아주 얇은 유리창 사이 단절된 느낌은 여전히 적응이 어렵다. 하기야 이 학교 교장부터 차창을 내리지 않는다. 개인의 취향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석연釋然치 않다.
세상 꼴도 비슷하다. 9월 중순의 날씨도 세상과 비슷하다. 석연치 않은 것투성이다. 하여 이 아침, 風景을 생각해 본다.
사실 風景이라는 단어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바람과 햇볕이다. 바람이라 함은 변화의 느낌, 즉 동적인 모든 것을 말함이고 햇볕은 당연히 그 반대쪽에 있는 정적인 모든 것을 대표하는 글자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風景은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공간의 모든 것과 동시에 정지해 있는 모든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푼크투스 콘트라 푼크툼(punctus contra punctum)은 음악 용어다.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대위법으로 풀이된다. 대위법이란 음악에서 독립된 선율을 동시에 2개 이상 연주하도록 만들어진 악곡으로서 음의 수직적 결합(화음, 화성)과 수평적 결합(멜로디)이 동시에 갖추어지도록 만들어진 작곡의 방식이다.
따라서 동적인 風과 정적인 景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바로 ‘푼크투스 콘트라 푼크툼’이 된다. 즉 수평적 상황이 절묘하게 수직적으로 맞아떨어짐을 표현한 단어다. 이 단어의 의미에 잘 맞는 계절이 다가 올 가을이다. 가을날 떨어지는 낙엽은 중첩된 수직적 화성이 수평적 화성 위에 내려앉아 절대적이고 완벽한 풍경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아침, 그런 풍경의 가을을, 그런 풍경의 세상을 기다린다.
* 진재眞宰: “진정한 주재자가 있는 듯한데, 다만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 작용은 뚜렷하지만 그 형태는 보이지 않는다.” 장자 제물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