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산책(36)

by 김준식

'평화'는 매우 관념적 용어다. 평平은 물에 뜬 수초 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 글자이고 和는 벼 화禾와 입 구口가 만난 형성 글자이다. 좀 더 관찰해 보면 평화의 의미는 이러할 것이다. 즉, 和는 먹을 것(벼=禾)을 의미하고, 입 구口는 사람들을 의미하니 사람들의 식욕(욕망)을 물에 뜬 수초처럼 고르게 나눔으로써 얻어지는 상황이라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고름(平)’의 의미가 단순히 먹을 것에만 국한되겠는가? 거의 모든 상황에 통용되는 것이 이 ‘고름(平)’이다. 그러나 실제 완벽한 ‘고름(平)’은 없다. 상형자 平의 근거가 된 수면에 떠 있는 수초라 할지라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수면 밑으로 내려가는 뿌리가 반드시 있고, 물과 접촉하는 잎이 있으며, 물에 닿지 않는 꽃도 있다. 하지만 특정 부분을 중심으로 놓고 수초가 고르지 않다고 말할 수 없고, 또 말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물 위에 떠 있는 수초 전체가 하나의 ‘고름(平)’으로 우리에게 인식되는 것이다.



언제나 그러하지만 '평화'는 절대적이며 상대적인 개념으로 분류된다. 절대, 상대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거나 애매한 문제이므로 여기서 이야기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수초의 ‘고름(平)’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매우 상대적인 의미라고 가정해 두자.


노자께서는 도덕경 제22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幣則新, 少則得 多則惑” (곡즉전 왕즉직, 와즉영 폐즉신, 소즉득 다즉혹 –이때 則은 ‘곧’의 의미이므로 ‘즉’으로 읽는 것이 맞다.)


"굽히면 온전하고, 구부리면 곧아지며, 파이면 채워지고, 낡으면 새로워지며, 적어지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된다."


‘굽힌다’와 '구부린다’는 같은 의미로 파악할 수 있다. 즉 굽히면 평화로워진다. 권위를 가진 존재이거나 힘 있는 존재가 굽히는 순간, 거의 모든 문제는 자연스럽게 완전해지고(全) 바르게(直) 된다. 노자의 말씀이 아니라도 이 말은 노자 이전 시대부터 현재까지 전해져 오는 거의 진리에 가까운 말이다.



파이다(와窪-웅덩이)의 의미는 주역의 감지坎止로 해석될 수 있다. 주역에서 감지坎止의 坎괘는 물을 의미한다. 따라서 감지란 흐르는 물이 흐름을 멈추었다(止)는 뜻이다. 다시 물이 흐르려면 물이 차 오르기를 기다려야 한다. 차 올라야 다시 흐를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채워지기를 바라지만 사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도 없다. 이 역시 진리에 가까운 말이다.



도덕경 22장의 바탕에는 '평화'에 대한 생각이 짙게 깔려있다. 즉, 굽혀서 그리고 구부려서 완전해지고 바르게 된다는 것, 패인 곳이 채워지는 것과 혼란스러움이 사라진다는 것 자체가 바로 평화의 본모습에 해당한다. 이를테면 평화란 매우 적극적인 작용을 통한다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기다려야 하는데 여기에 노자께서는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내 걸었다. 그것은 바로 평소 굽히지 않고 뻣뻣한 무엇이 굽히고 구부릴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권력을 가진 자이거나 재물을 가진 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늘 평화는 멀고 그 길에 이르는 길은 험난하다. 누가 먼저 굽힐 것이며 어떤 것을 구부려 바르게 할 것인가는 각자의 논리가 작용한다. 자신의 위치에 따라, 자신의 상황에 따라 들쭉날쭉한 것이 평화의 속성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것은 평화라는 개념이 가진 절대적인가 혹은 상대적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 '평화'가 사실 없다.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분명하고 확실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자유(liberty)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때문이다. Liberty의 어원은 ‘freedom to do as one chooses’ (© 2001-2023 Douglas Harper, Online Etymology) 즉 ‘원하는(선택)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하여 자본주의는 날로 천박淺薄해지고 포악해진다. 이 자유를 가졌거나 가졌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누구를 위해서도 굽히지 않으며 무엇을 위해서도 구부리지 않는다. 절대로 채워지기를 기다리지 않으며 낡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이 가지려 한다. 왜? Liberty는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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