跋文
1. 변화
2019년 9월 1일 교장이 되어 4년을 보내고 2023년 9월 1일 교사로 돌아왔다. 극적인 변화다. 모르기는 해도 대한민국 학교에서 이런 극적인 변화를 경험해 보는 사람은 극히 소수일 것이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30년을 다녔던 학교가 4년 만에 매우 생소해졌다. 학교를 이동했으니 거기서 오는 생소함과 교장에서 교사로 돌아온 생소함이 더해져 60을 넘긴 나이에 한 동안 매우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사람의 일인지라 이내 분위기를 받아들이고 또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현재 학교의 구성원으로 잘 녹아들어 가고 있다. 세상에 내가 적응하지 못할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만용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한시를 쓴 지 올해로 16년이 지났다. 처음 한 편을 쓰는데 족히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후 7~8년 동안 무던히 노력을 기울였고 이제는 일 년에 60~70편을 쓴다. 뭔가 대단한 것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한시의 형식으로 일기를 쓴다는 표현이 맞다.
해마다 책의 제목을 정하는데 올해는 달생達生이다. 달생은 '장자' 철학의 핵심 중의 하나인 무위의 철학을 관념이 아닌 현실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내편 양생주養生主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는 달생은 스스로의 삶을 완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사심私心을 버리는 태도, 곧 무위를 삶의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실제 2023년 나의 책 내용은 무위와는 거리가 먼 유위와 집착과 분노가 더러 보인다. 짐짓 무위로 나아가려는 듯 보이지만 아직은 내 삶이 무위로 나아가기에는 너무 거칠다.
어떻게 보면 글을 쓰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고 난감한 일이라는 생각이 해마다 깊어진다. 뭔가를 남기겠다는 강한 욕망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 불편함은 다시 모양을 바꿔 나의 또 다른 욕망을 자극하고, 나는 그 욕망에 사로잡혀,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와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항상 기억하고 망각하기를 반복한다. 물론 많이 기억할수록 좋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때로는 망각해야만 긍정적일 때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의 기록이 긍정적인 망각을 방해하는 글이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잊어버리고 말 일을 이렇게 문자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부담을 가지고 있다.
2. 변방
2023년 10월 12일 오늘, 문득 생각해 보니 60대 초반에 접어든 나의 삶에서 나는 단 한 번도 중심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늘 변방을 떠 돌았고, 스스로 주변부를 지향하며 애써 태연한 척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변방의 삶은 자칫 소홀해지기 쉽다. 스스로 가치부여를 하지 않는 순간 자신의 삶은 초라해지거나 혹은 가벼워지고 만다.
소홀해지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해 보지만 한계를 자주 느낀다. 한시를 쓰는 것 역시 소홀해지지 않으려는 일 중 하나에 속한다. 소홀해지지 않기 위해 일부러 더 어렵고 힘든 세계로 나를 밀어 넣는 일, 막상 이렇게 생각하니 모든 일이 돌연 너무나 무가치해 보이기도 한다.
올해로 10번째 한시집을 묶는다. 어리석으니 참 무모하다. 해마다 무모함이 더 심해지지만 얼마까지 무모해질지 두고 볼 일이다.
2014 궁구, 2015 좌치, 2016 보광, 2017 재유, 2018 골의, 2019 천예, 2020 각의, 2021 외물, 2022 선성 2023 달생(아직 나오지 않았음) 10권이다. 만 10년이 되는 2024년 책 제목은 아직 미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