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집 표지를 만들다.

by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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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시집 표지를 만들다.


감히 미니멀리즘에 기초하였다고 말하고 싶지만 미니멀리즘에 대하여 아는 것은 선인장 가시 끝만큼도 되지 않으니……


2023년 달생 표지는 색을 넣었다. 지금까지 모든 책에서 흰색 바탕 위에 글을 썼지만 이번만큼은 색을 넣기로 마음먹고 여러 가지 색을 고려해 보았다. 처음엔 강렬한 붉은색으로 할까 하다가 보는 사람의 눈에 너무 부담을 줄 수 있을 듯하여 푸른색을 기초로 하여 녹색과 빨강을 약간 섞은 색으로 했다. 품위 있는 푸른색이 목표였지만 품위 있는지 없는지는 나의 색채감과 무관하지 않을터......


괴테는 그의 색채론에서 ‘청색’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했다. (Zur Farbenlehre, Johann Wolfgang von Goethe, 권오상 옮김, 민음사, 2016. 253~254쪽)


청색(Blaue)은


778 청색은 언제나 어두운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779 이 색은 눈에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특별한 영향을 미친다. 청색은 색으로서는 하나의 에너지이다. 하지만 이것은 수동적인 영역에 속하며 가장 순수한 상태에서는 말하자면 자극을 가진 무(無)와 같다. 이 색에서 우리는 자극이자 휴식이라는 그 어떤 모순적인 것을 본다.

780 높은 하늘과 멀리 있는 산들이 청색으로 보이듯이, 청색의 표면도 우리 눈앞에서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781 우리 앞에서 달아나는 호감이 가는 대상을 기꺼이 쫓아가듯이 우리는 청색을 기꺼이 바라본다. 그것이 우리 쪽으로 밀쳐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782 청색은 그것이 우리에게 그림자를 연상시키듯이 차가운 느낌을 준다. 그것이 검은색에서 어떻게 파생되는지는 알려져 있다.

783 완전히 청색으로 도배된 방들은 어느 정도 넓어 보인다. 하지만 차갑고 텅 비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784 청색 유리는 물체들을 우울한 빛으로 보이게 한다.

785 청색이 어느 정도 양의 영역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면 불쾌하지 않은 인상을 준다.


“자극을 가진 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멀어지는 느낌, 차가운 느낌, 그림자, 우울한 빛, 불쾌하지 않은 인상, 그리고 텅 빈 느낌…… 모두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느낌이다.


위대한 천재 괴테에 기대어 2023년 한시집 달생의 표지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