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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Nov 09. 2023

『코스모스』讀後記(7)

7.  영감을 주는 이야기


각 장의 서두에 ‘세이건’은 그 장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러한 영감靈感 불러일으키는 고전, 혹은 유명 인사의 어록을 기록해 놓았다.


그중 인상적인 몇 개의 이야기를 해 본다.


1장 THE SHORES OF THE COSMIC OCEAN((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첫 장의 첫 이야기는 ‘키체’ 마야(여기의 키체는 스페인어로 Quiché이고 영어로는 Kʼicheʼ로 표현한다. ‘키체어’로 많은 나무들이라는 뜻이다.)의 성전聖典 『포폴부흐』("공동체의 서" 또는 "자문의 서"라는 뜻이며, 보다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사람들의 서"라는 뜻)에서 가져왔다. 『포폴부흐』의 가장 두드러지는 내용은 창조 신화와 대홍수 신화, 쌍둥이 영웅 ‘후나흐푸’와 ‘이슈발랑케’의 서사시적 이야기, 그 족보 등이 있다. 『포폴부흐』신화는 신인동형론神人同形論적 조상 이야기로 시작하여 키체 왕국의 족보로 끝난다.


책에서 인용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The first men to be created and formed were called the Sorcerer of Fatal Laughter, the Sorcerer of Night, Unkempt, and the Black Sorcerer... They were endowed with intelligence, they succeeded in knowing all that there is in the world. When they looked, instantly they saw all that is around them, and they contemplated in turn the arc of heaven and the round face of the earth... [Then the Creator said]: "They know all... what shall we do with them now? Let their sight reach only to that which is near; let them see only a little of the face of the earth!... Are they not by nature simple creatures of our making? Must they also be gods?" 

『The Popol Vuh』 of the Quiché Maya


“맨 처음에 창조된 사람들은 "흉악한 웃음의 마법사", "밤의 마법사", "야만인", "어둠의 마법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들은 지혜를 부여받았기에, 세상의 모든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이들이 눈을 떠 세상을 둘러보자, 그 즉시 모든 것을 인지하였으며 거대한 친구와 땅의 둥그런 얼굴도 모두 알아보았다. 그러자 [창조주]께서 입을 여셨다.: "저들은 전지하구나, 이제 저들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저들의 눈길이 가까운 곳에만 이르게끔 하고, 땅의 얼굴도 조금씩밖에 보지 못하게 하리라! 저들은 우리 손에서 나온 한갓 피조물이 아니던가? 저들마저 신이 되어야 되겠는가?"

키체 마야의 『포폴부흐』


이들의 생각 속에는 분명 창조주가 존재한다. 그리고 창조주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 있다. 그러나 그 피조물이 창조주의 권능에 다가서자 창조주는 돌연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의 능력을 제한하려 한다. 피조물의 위치를 잊고 망상에 사로잡힌 그들을 다시 통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세이건’이 1장에서뿐만 아니라 이 책 전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기초, 혹은 바탕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용문이다. 이를테면 이 책을 쓴다는 것은(우주의 비밀에 다가선다는 것) 어쩌면 창조주의 권능에 다가서는(서양인이었던 ‘세이건’의 기도교적 사고 구조에서 생각한다면) 것일 수도 있다는 내적인 고민이나 두려움 따위가 얼핏 느껴지기도 한다.  


4장 BLUES FOR A RED PLANET 앞에 있는 ‘하위헌즈’의 이야기도 꽤나 인상적이다.


“A man that is of Copernicus' Opinion, that this Earth of ours is a Planet, carry'd round and enlightn'd by the Sun, like the rest of them, cannot but sometimes have a fancy... that the rest of the Planets have their Dress and Furniture, nay and their Inhabitants too as well as this Earth of ours.... But we were always apt to conclude, that 'twas in vain to enquire after what Nature had been pleased to do there, seeing there was no likelihood of ever coming to an end of the Enquiry... but a while ago, thinking somewhat seriously on this matter (not that I count my self quicker sighted than those great Men [of the past], but that I had the happiness to live after most of them) me thoughts the Enquiry was not so impracticable nor the way so stopt up with Difficulties, but that there was very good room left for probable Conjectures.”


Christiaan Huygens, 『New Conjectures Concerning the Planetary Worlds; Their Inhabitants and Productions』 c. 1690


“우리의 지구가 다른 행성들처럼 태양 주위를 돌면서 빛을 받는 한 행성이라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라면, 나머지 행성들에도 지구에서와 같이 가재도구뿐 아니라 거주민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공상을 때때로 해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곳에서 자연이 제멋대로 벌여놓은 수많은 일들을 탐구해 봤자 헛수고나 마찬가지라고 언제나 뻔한 결론을 내리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내가 이 문제에 대해 다소 진지하게 생각해 본 끝에 그렇다고 해서 그 옛날의 위대한 분들보다 내가 더 뛰어나다고 간주해서가 아니라. 그분들보다 훗날에 살게 되는 행운을 가졌을 뿐이라는 뜻에서 이 탐구가 아주 실행 불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온갖 어려움을 무릅써야 하는 그런 성격의 일도 아니고,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추측은 해 볼 만한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행성의 세계와 그 거주자; 그리고 생산물에 관한 새로운 추측들』 1690년경


스피노자의 후원자이면서 위대한 천문학자였던 하위헌즈의 겸손함과 조심스러움이 묻어난다. 특히 미지의 행성 화성에 대한 이야기를 앞두고 ‘세이건’이 이와 같은 겸손한 하위헌즈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바로 자신이 하는 이야기가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7장 THE BACKBONE OF NIGHT 앞에 놓인 홀바흐 남작*의 이야기도 매우 인상적이다. 


“If a faithful account was rendered of Man's ideas upon Divinity, he would be obliged to acknowledge, that for the most part the word "gods" has been used to express the concealed, remote, unknown causes of the effects he witnessed; that he applies this term when the spring of the natural, the source of known causes, ceases to be visible: as soon as he loses the thread of these causes, or as soon as his mind can no longer follow the chain, he solves the difficulty, terminates his research, by ascribing it to his gods... When, therefore, he ascribes to his gods the production of some phenomenon... does he, in fact, do any thing more than substitute for the darkness of his own mind, a sound to which he has been accustomed to listen with reverential awe?”

Paul Heinrich Dietrich, Baron von Holbach, 『Système de la Nature』 1770.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성의 개념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서 다음과 같은 측면을 발견하게 된다. 감추어진, 동떨어진, 미지의 원인으로 인한 현상에 접하게 될 때, 사람들은 '신'이란 단어를 흔히 사용한다. 기존 원인의 자연적 근원인 이치의 샘이 손에 잡히기를 거부할 때, 사람들은 이 신이라는 용어에 자주 기대게 된다. 원인에 이르는 실마리를 놓치자마자, 또는 사고의 흐름을 더 이상 쫓아가지 못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원인을 번번이 신의 탓으로 돌려서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때까지 해오던 원인 탐구의 노력을 중단하고는 한다. …… 그러므로 어떠한 현상의 결과를 신의 탓으로 돌리기만 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무지를 신으로 대치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고 하겠는가? 이제 '신'은 인간이 경외심 가득한 마음으로 듣는 데 익숙해져 버린, 하나의 공허한 소리일 뿐이다.” 

폴 하인리히 디트리히 홀바흐 남작, 『자연의 체계』, 1770년


* 폴 티리 홀바흐 남작(Paul Thiry, baron d’Holbach, 1723~1789)은 18세기의 프랑스의 계몽사상가로서 독일의 부유한 상인 집에 태어나 후에 프랑스로 귀화했다. 독일어 이름은 파울 하인리히 디트리히 폰 홀바흐(Paul Heinrich Dietrich von Holbach)다. 부친에게서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그는 학문을 애호하여 파리의 자기 집을 살롱으로 삼아 유명한 철학자나 문학가를 초대했다. 주로 백과전서파 사람들이 모였는데 디드로, 엘베시우스, 콩디야크 등이 늘 찾아왔으며, 달랑베르와 장 자크 루소도 자주 출입했다. 주요 저서로는 『자연의 체계』(1770), 『폭로된 기독교』(1756), 『종교의 관용에 관하여』(1769), 『사회의 체계』(1773) 등이 있다.


‘홀바흐’가 생각한 신의 개념에 동의하지만 신을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마음 한 편은 왠지 허전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8장 TRAVELS IN SPACE AND TIME 앞에는 특이하게도 『장자』 제물론의 이야기가 있다. 


莫壽乎殤子 而彭祖爲夭(막수호상자 이팽조위요)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일찍 죽은 아이보다 長壽한 사람이 없고, 彭祖는 요절(젊어 죽었다.)했다.”


여기 등장하는 팽조는 중국 역사에서 오래 산 사람(800살까지 살았다고 전해짐)의 대표자 격인데 그를 요절했다고 하는 ’장자’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팽조에 대한 기록 중 『순자』의 기록은 이러하다. 


“彭祖 堯臣 名鏘 封於彭城 經虞夏至商 壽七百歲也(팽조 요신 명장 봉어팽성 경우하지상 수칠백세야) 彭祖는 堯의 신하로, 이름은 鏘이고 彭城에 봉해졌다. 虞‧夏를 거쳐 商 때까지 살아 그 수명이 7백 세였다.”


어쨌거나 오래 산 인물인데 왜 요절했다고 했는가? ‘장자’가 기준의 문제를 깨기 위한 장치로 사용한 이 말은 우리에게 매우 이상해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을 빼 버리고 본다면 일찍 죽는다는 의미와 오래 산다는 의미는 지극히 상대적이다. 바로 이 점에 ‘세이건’은 집중하면서 8장의 주제인 시간과 공간이라는 주제 앞에 이 글을 놓았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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