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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Dec 18. 2023

무릇 고요는 빠름인가!

夫靜而疾亟 (부정이질극) 무릇 고요는 빠름인가


靜坐見曉色 (정좌견효색) 고요히 앉아 새벽빛을 보니,

天冥混碧紺 (천명혼벽감) 어둑한 하늘 푸름과 감색이 섞였네.

四時閑來去 (사시한래거) 사시는 한가로이 오가지만,

轉轉此掩關*(전전차엄관) 이리저리 생각하다 이제 문을 닫노니…


2023년 12월 18일 아침. 아침 식사를 준비하다가 급히 카메라를 꺼내 하늘을 촬영했다. 낮은 기온은 하늘빛을 더욱 깊게 한다. 다가오는 일과 지나가는 일이 언제나 같은 무게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때론 지나간 일이 더 무겁기도 하고 때로는 다가올 일이 더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새벽은 나에게 있어 늘 영감靈感의 원천이다. 밝아지는 산과 하늘의 경계로부터 여전히 짙은 하늘과 산의 조화는 언제나 완벽하다.


밝아지기까지 지극히 짧은 이 순간들이 모여 세월이 되지만 극단적으로 이 순간은 항상 영원하게 느껴진다. 시에 대한 동 서양의 접근은 극단적으로 다르거나 혹은 비슷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시는 자연에 대한 모방(미메시스)이라고 규정한다. 그의 시학('Poetics’ 그리스어 ‘페리 포이에티케스’)에 의하면 “인간은 어릴 때부터 재현을 하고자 하는 성향을 타고 난다. 인간은 어떤 동물보다도 재현에 능하고, 재현을 해봄으로써 배움을 시작한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 구별된다. 또한 인간은 재현된 것들에서 쾌감을 느끼는 성향을 타고난다.”라고 말한다.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승영조 옮김, 유페이퍼, 2013. 17쪽) 즉 아리스토텔레스는 객관적 사물의 재현을 토대로 시 자체의 구조적 측면에 집중한다. 


그런가 하면 동양에서는 당시(당나라)까지의 시를 24개 풍격으로 분류한 사공도의 24시 품에서 보듯이 대상의 모방을 기초로 하여 그 시를 표현한 시인의 심상 변화에 핵심을 둔다. 심상의 변화는 서양 아리스토텔레스의 구조적 측면보다 좀 더 세밀하고 다양한 시적 해석을 낳을 수 있다. 


시는 그림과 어울려 더욱 빛을 발하기도 한다. 서양 회화 역사에서 회화가 시적 풍경을 설명한 것은 19세기가 되어서 나타난 인상주의가 시작일 것이다. 이전의 서양 회화의 중점은 인물화였고 풍경은 단지 그 인물을 장식하는 장치였을 뿐이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시와 그림은 상고 시절 시와 그림이 탄생했던 시절부터 함께 해 왔고, 마침내는 시가 그림을 그림이 시를 지지支持하는 단계에 이른다. 


어쨌거나 시는 곧 그림이요, 그림은 시이며 따라서 시는, 세상의 풍경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 새벽 풍경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그것이 다시 새벽 풍경으로 화化하는 경지를 옮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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