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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Mar 04. 2024

학교의 입학이 허가사항인가?

학교의 입학이 허가사항인가?


오늘 대한민국 유, 초, 중, 고 및 대학교에서 모두 입학식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 교사로서 내가 볼 수 있는 입학식도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다. 입학식을 지켜보며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해 본다. 


교장 재임 시절 나는 기존의 모든 입학식 절차를 생략하고 새로운 형식의 입학식을 만들었는데, 그 이름을 ‘이해와 친교의 입학식’이라고 했다. 사실 지금까지의 입학식은 입학의 환영이나 기쁨보다는 학교의 공식적인 ‘의례’에 가까웠다. 물론 이 형식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다만 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또 입학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가정하에서 입학식이라는 이름아래 학교 모든 구성원들(2, 3학년 학생, 교사, 행정실 직원, 공무 직원 모두 포함)과 신입생이 서로를 확인하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것에 방점을 두었었다. 


하지만 교사로 돌아와 처음 맞이라는 오늘 입학식은 완전히 학교의 의례였다. 가장 고민되는 지점은 ‘학교장 입학허가’ 순서였다. 허가許可라는 단어의 일반적인 의미는 ‘행정청이 법령에 의한 일반적·상대적 금지(부작위 의무)를 특정한 경우에 해제하여 적법하게 일정한 사실행위 또는 법률행위를 할 수 있도록 자유를 회복시켜 주는 것’을 말한다.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이 그런 것이라고? 대학교 입학도 비슷하기는 하다.


이런 용어, 즉 허가라는 표현을 쓴 연원을 천천히 되짚어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입학허가는 1911년 일제 치하에서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조선 교육령(전체 30조)에 그 기초를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이유는 이러하다. 조선 교육령 제2 장 8조의 조문을 보면 ‘보통학교는 국민교육의 기초가 되는 보통교육을 시키는 곳으로써 신체의 발달에 유의하고 국어(일어)를 가르치며 덕육을 베풀어 국민 된 성격을 양성하고 그 생활에 필요한 보통지식과 기능을 가르친다.’


이 조문의 분명한 주체는 국가(당시 일본)다. 그 예로 ~시키는 곳, ~베풀어, 양성하고, ~가르친다. 등의 단어가 그것을 증명한다. 국가가(일본) 교육을 베푸는 장소에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 당연히 국가, 혹은 당해 학교장의 허가가 필요하다. 그렇게 각인된 허가가 해방된 지 이제 80년이 다 되어 가는 이 나라 학교의 입학식에서 사용된다? 참 어이없다. 그나마 다행은 ‘학교장 허가’로 바뀌었다. 


그런데 과연 학교장이 입학을 허가할 수는 있나? 현재 우리 초등등교육법에서 제20조(교직원의 임무) ①항은 학교장의 임무를 명시하고 있다. ‘교장은 교무를 총괄하고, 민원처리를 책임지며, 소속 교직원을 지도ㆍ감독하고, 학생을 교육한다. ‘<개정 2021.3.23, 2023.9.27> 


어디에도 입학을 허가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조문 마지막의 ‘학생을 교육한다’를 최 광의로 해석해도 허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좀 더 범위를 넓혀 교육감의 임무를 제시한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약칭: 교육자치법) 제20조 교육감의 관장사무에도 입학허가를 유추할 만한 근거 조항은 찾을 수 없다.


현행 법령에 의한 '학교장 입학허가 선언'의 무근거성에 비추어 볼 때, 조선교육령의 희미한 그림자로 유추해석 될 가능성이 높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온몸으로 저항한 민족정신의 표상이 되는 기념일인 3.1절 기념식이 친일 논란에 휩싸인 2024년 대한민국. 그 나라 학교 현장에서 어쩌면 일제 교육의 그림자일지도 알 수 없는 '학교장 입학허가'를 보는 내 마음은 한 없이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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