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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n 07. 2024

아포파시스(Apophasis)


아포파시스(Apopha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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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그 내용을 암시하는 대화의 기법. 상대에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연상하게 만들지만 정작 그것 자체에 대한 말을 멈추거나 딴전을 피우면서(휘휘 돌리거나) 화자가 그것에 대한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까지도 상기시키는 대화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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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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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도’ 자체를 통해 하고자 한다. 이를테면 ‘도’는 "이렇고 저렇고 한 것이다."라고 설명하지 않고, 문득 ‘도’라고 말하여지는 것은 ‘도’가 아니다라고 말함으로써 ‘도’와 ‘도’ 아닌 것(비록 ‘도’로 불리기는 하지만)을 대립시킨다. 학자들에 따라 문장 속에서 ‘도’를 ‘도’ 아닌 것과 구분하기 위해 ‘참된’ ‘바른’ 등의 수식어를 ‘도’ 앞에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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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쉽게 한자 그대로 ‘도道’를 풀이해보자. 한자 ‘道’는 머리 수首와 쉬엄쉬엄 걸어갈 착辵이 합쳐진 회의(뜻이 합쳐진) 자다. 그대로 해석해보면 머리首를 마음으로 보고, 쉬엄쉬엄 걷는 모습을 몸으로 보아 마음과 몸이 천천히 같이 움직인다는 의미가 된다. 즉, 머리首가 가고자 하는 방향대로 몸이 따라 움직이는 것이 바로 ‘도’라는 뜻이 된다. 여기에는 어떠한 가치 기준이 개입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이 행동을 ‘도’라고 부르는 순간, 즉 언어로서 한정하는 순간 그 ‘도’는 진정한 ‘도’가 이미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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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나오는 명(名 – 이름)에 대한 논의는 앞의 ‘도’에 대한 논증의 심화 또는 예시일 수 있다. 즉 실존하는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부르는 순간, 그 사물은 불려진 이름의 틀에 갇혀버려서 실체와는 다른 것이 부가되기도 하고 또는 실체와는 어긋나거나 이름이 붙여지는 순간 본질이 훼손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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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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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전체에는 시험 삼아(嘗)라는 표현이 열 번 이상 나온다. 하지만 정작 그 말 속에는 그 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물론에서 설결과 왕예의 대화는 아포퐈시스의 결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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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결齧缺이 왕예王倪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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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께서는 모든 존재가 다 옳다고 인정되는 것에 대해서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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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예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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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


“선생께서는 선생이 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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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예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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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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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모든 존재에 대해 앎이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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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예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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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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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렇지만 시험 삼아~~  


프랑스의 아방가르드 화가 Francis-Marie Martinez de Picabia(피카비아)의 1920년 작 La Sainte Vierge ( The Blessed Virgin ) 이다. 뭔가? 시험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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