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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n 15. 2024

오늘 두 번의 결혼식에 참여하며

오늘 두 번의 결혼식에 참여하며 ……


*브런치 1800번째 글, 2016년 10월 7일 처음 시작했으니 약 7년 9개월, 약 93개월, 한 달에 약 20편의 글을 올렸다. 지금에야 의미 없는 글도 있을 수 있지만 쓸 당시에는 의미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기를 스스로 다짐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혼이라는 제도는 남녀 사이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불법적인 거래(?)를 합법화하는 가장 좋은 도구라는 것을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것도 부모와 여러 친지들을 동원시켜 놓고 말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나의 본성이 악해서일까?  


1.     성악설 


사마천에 의하면 '순자'는 제나라 양왕 재위시절 직하에서 수장인 제주(祭酒:수군 장수)를 세 번씩이나 역임했으며 초나라 때는 난릉의 수령으로 임명되었으나 춘신군의 암살로 직위해제 되었다. 그 후 난릉에 정착하여 저술을 편찬하였다. '순자'는 진나라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했다. “백성들의 순박하고 순종적인 정신과 관리들의 정직과 정부의 효율성을 찬양하지만 왕도의 진정한 원리를 가르칠 유儒가 전무全無하다”라고 불평을 하기도 한다. 엄혹하고 준엄했던 전국 시대 말, 순자는 그래도 유가의 도덕주의를 옹호했다.  


순자에게 인간의 외부는 하늘과 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하늘은 유력한 동반자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 모든 것을 지배한다. 공자와 마찬가지로 순자도 인간중심적인 견해를 가졌으나 하늘과 땅은 인간의 의지와는 독립된 도에 따른 것으로 호기심과 실용적인 목적을 제외한 어떠한 간섭도 배제한다. 그의 ‘천론天論’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행위에 대한 하늘의 호응을 기대하는 모든 사람들, 특히 ‘점술’이나 ‘음양 우주론’에 기대어 길흉의 조짐들로부터 가르침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이자 그들의 하늘에 대한 경외심에 대한 순자 나름의 대답이다.   


“하늘의 운행은 한결같다. 이것은 성군 요 때문에 존재하지도 않고 폭군 걸 때문에 없어지지도 않는다.” “하늘에는 계적(啓迪: 길을 열어 인도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앞장서서 이끌어 나감을 말함.)이 있고 땅에는 자원이 있으며 인간에게는 질서가 있다. “하늘을 확대하여 사색하기보다는 왜 이것을 길들여서 제어하지 않는가?” “유성이 떨어지고 나무가 울 때, 나라의 모든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왜 이런가?’라고 묻는다. 왜라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것들을 괴이하게 생각할 수는 있어도 경외하는 것은 잘못이다.” 즉, 순자에게 있어서 자연현상은 단지 자연현상일 뿐이다. 거기에는 그 어떤 함의나 계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맹자의 ‘인성론’에 대한 순자의 공격은 유가儒家 내부에서 이루어진 논쟁의 발전으로 짐작된다. 순자는 그의 책 순자 ‘성악’ 편 속에서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키는데……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인간이 선하다는 것은 인위人爲다.(순자 성악편性惡篇 제23第二十三 人之性惡 其善者 僞也) 이제 인간의 본성은 날 때부터 이익을 좋아하는 속성을 그 속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따르게 된다. 따라서 다툼과 빼앗음이 일어나고 자제와 존경은 사라진다.”(이하 생략)  


인성에 대한 순자의 주장은 맹자와 다르다. 맹자가 말한 본성은 건강한 신체가 음식으로 보양되듯 교육으로 보양될 때에 만이 작용한다. 반대로 순자에게는 “교육에 영향받은 것은 모두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인간 속에 존재하지만 배울 수 없고, 그것을 위해 힘써 노력할 수도 없는 것을 일러 본성이라 하고 인간 속에 존재하지만 배울 수 있고 그것을 위해 힘써 노력해서 성취할 수 있는 것을 모두 인위라고 했다.”(거의 결정론적 사고) 또한 의례와 정의는 성인들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말하는데 “성인이 생각을 축적하고 인위를 습관화함으로써 의례와 정의를 생산하고 표준과 척도를 창시했다. 결과적으로 의례와 정의 및 표준과 척도는 성인의 인위에서 만들어진 것이지 인간의 본성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법가를 제외한 대부분 학파가 인정하는 것이다.  


2.     결혼


다시 결혼으로 돌아가 결혼이라는 의례와 표준, 척도와 정의에 대하여 되짚어 본다. 결혼은 인간들 스스로 만들어 낸 사회제도다. 수 천년 동안 결혼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는 다시 의미를 잉태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번식이라는 지극히 당연하고 강력한 남, 녀의 성적 에너지를 일부일처제로 제한하고 거기에 윤리와 도덕을 버무리고 다시 신성함까지 포장한 것이 오늘날의 결혼인데 합법적으로 이혼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이 제도가 가진 한계가 느껴지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객으로 와 있는 결혼식장은 매우 번거로운 장소이다. 하지만 결혼은 엄숙하고 정결해야 한다는 근본 취지에 비춰 본다면 지금의 결혼 방식은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방식으로 보인다. 약 1시간 동안의 과정 대부분은 사진 촬영과 결혼식장에서 마련한 의식이 전부다. 주례의 이야기도 허공에 메아리일 뿐,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현재의 이 방식은 분명 잘못된 방식이 틀림없다. 두 번째 예식장에서 내가 한 일이라고는 점심 먹는 것이 전부였다.


오늘 그 결혼식을 나는 두 번이나 참여했다. 한 번은 주례라는 증인으로 또 한 번은 학교 친목회장이자 동시에 동료라는 자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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