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Ästhetik

두은문향에 바치다

by 김준식

두은문향에 바치다


봄날,


찻잎을 따서 차를 만들었고 단지에 담아 두었으니 계절이 바뀌면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침내 그 찻잎에 뜨거운 물을 붓고 우려서 차를 마시니 이것은 자연의 큰 기운을 들이마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잡설로 어찌 이 정교하고 담담하며 동시에 거대함을 표현할 수 있을까만……


1. 和


중용에 이르기를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中也者 天下之大本也 和也者 天下之達道也”(희노애악지미발 위지중 발이개중절 위지화 중야자 천하지대본야 화야자 천하지달도야) (중용 1장) “. “희로애락의 감정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을 ‘中’이라고 일컫고, 나타나서 모두 절도(질서) 속에 있는 것을 ‘和’라고 일컫는다. ‘中’은 천하의 ‘대본大本’이고, 和는 것은 천하의 ‘달도達道’이다."라고 했다.


맑은 차 한잔은 바로 위 중용에서 말하는 ‘中’이요 ‘和’다. 즉 자연의 큰 기운을 담은 찻잎을 우려내어 인간에게 전해주니 그것이 곧 ‘中’이요, 동시에 ‘和’다. ‘중화’는 곧 자연과 천지 그리고 세상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허무는 맑은 화해和解다. 여기서 방점은 당연히 ‘화和’에 있다.


정성으로 만들어진 차를 다시 세월에 맡기니 그 자체로 거대한 자연이요, 세상이다. 그것이 맑은 물을 매개로 하여 인간에게 깊고 향기로운 차로 다가오니 이것이 자연과 인간의 지극한 어울림, 즉 ‘和’인 것이다.


2. 通


‘장자’와 ‘혜시’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장자’는 자신이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고 했다. 그러자 ‘혜시’는 ‘장자’에게 묻는다. 그대가 어찌 물고기의 마음을 알 수 있는가? 실증적인 ‘혜시’는 ‘장자’를 다그친다. 하지만 ‘장자’는 이 물음에 짐짓 즉답을 피하고 오히려 ‘혜시’의 질문 사이를 파고들어 자신의 이야기를 관철시킨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바탕은 논리가 아니라 ‘通’이다. 즉 ‘장자’는 이미 물고기를 본 다리 위에서 물고기와 바로 ‘通’하였기 때문에 지극히 단순한 언어로써 ‘혜시’에게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장자』 ‘추수’)


봄 햇살에 찻잎을 따서 비비고 덖어 차를 만든 뒤 고운 햇살에 말려 다시 단지에 넣어 깊은 어둠 속에 찻잎을 두어 다시 꺼내서 찻잎에 있는 잡티를 찬찬히 골라내어 두고, 일도 일각의 장인이 새긴 ‘두은문향’ 낙관을 찍은 봉투에 정성으로 꼭꼭 담아서 나눔을 하니, 이는 지난봄 하동의 하늘과 공기와 물빛이다. 말도 글도 몸짓도 필요 없는 완벽한 자연과의 大通이다.


고마운 마음을 어찌할 수 없어 잡문으로 마음을 나타내니 이는 小通이라 할 만하다.


진주문고 여태훈 대표의 ‘두은문향’을 받들고 마음으로 쓰다. 2024년 9월 11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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