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윽하고 어두움

by 김준식
KakaoTalk_20240913_133154988.jpg

窈窈冥冥(요요명명)* 그윽하고 어두움


至道極昏默 (지도극혼묵) 지극한 도는 모습이 없다는데,

未餘稀骨幹 (미여희골간) 아직 남아있는 희미한 줄기.

冊中過數年 (책중과수년) 책 속에서 몇 년을 보내니,

將物有能壇*(장물유능단) 어찌 만물에 주객主客이 있으리.


2024년 9월 13일 4교시 수업 중에. 3학년들이 수시 접수를 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자습을 하면서 오래 전 일던 책을 펼치다가 벌써 7년 전에 끼워 놓은 작은 풀꽃을 만났다. 이미 말라서 본래 형태를 잃고 그 뼈다귀만 앙상하다. 하지만 거기서 위대한 진리를 발견하고 급히 20자를 뭉쳐 놓는다.


당시는 사천 곤양고를 떠나는 해여서 거기 있던 작은 풀꽃조차 아름다워 눈에 보이는 풀꽃을 책에 꽂아 두었더니…… 오늘 아침 이렇게 발견되어 진리를 말하고 있다.


결구의 ‘능단’은 본래 ‘능소能所’이다. 운자를 맞추기 위해 비슷한 의미의 단壇을 썼다. ‘능소’는 유마힐경에서 이렇게 풀이한다. ‘능能’은 주체적, 주관적 상황을 말한다. 즉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볼 수 있는, 내가 느낄 수 있는 것들의 대표 단수가 ‘능能’이다. 그런가 하면 ‘소所’는 나와는 분리된 세상의 모든 것들로서 객체를 말한다. 좀 더 수직적으로 확장하면 ‘객관’까지 넓혀질 수 있을 것이다.


*『장자』 ‘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