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선정을 하며
내년부터 시행되는(고등학교는 2025년부터) 2022 교육과정에 맞춘 새 교과서 선정이 현재 이루어지고 있다. 내가 담당하는 과목은 10개의 출판사가 교과서를 만들었고 그중 하나를 선정하면 다음 교육과정이 바뀔 때까지 향후 3~4년 정도 그 교과서가 유지된다.
1. 교과서 선정의 구조
2000년대 이전은 말할 필요도 없고 2010년 넘어서까지 지속적으로 교과서 선정에 대한 비리와 잡음이 뉴스를 장식할 때, 당시에도 같은 교사로서 나는, 그런 사실들이 너무나 이상하게 들렸다. 면 소재지 고등학교에 근무하던 시절이라 우리 학교 학생 전원이 사용하는 교과서와 참고서를 다 합쳐도 시 지역의 한 학급 학생의 분량도 되지 못했기 때문에 교과서 선정 비리 같은 이야기는 그저 별세계의 이야기로 느껴졌다.
세월이 지나 퇴직을 1년 앞둔 지금, 2025년부터 고등학교에 적용되는 2022 교육과정의 교과서를 선정하게 되었다. 현재 있는 학교는 시내 중심 학교이며 한 학년에 8 학급인 규모가 큰 학교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난 5월부터 교과서 관련 출판사 지역 배포를 담당한 서점과 관계된 여러 사람들이 학교를 드나들었는데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교사인 나에게 그들이 놓고 간 명함만 20장(한 사람이 여러 장을 주고 간 것을 포함하여) 가까이 된다. 지금이야 모든 것이 투명해졌지만 이런 분위기라면 예전의 교과서 선정에 대한 잡음도 희미하게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까지 선정의 노력을 기울이는 상황으로 볼 때 교과서를 만들어 내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교과서가 선정되기만 한다면 매우 큰 이익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전국의 학교와 학생 수, 그리고 선정된 교과서와 그에 부가적으로 따르는 참고서의 수량과 금액은, 단지 자신의 과목 교과서 선정 외에는 관심이 없는 교사인 우리의 예상을 훨씬 넘을 것이다.
교과서 선정을 위한 심사용 교과서를 내놓은 출판사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10여 곳인데 그중에는 오래전부터 교과서를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회사도 있고, 이전에는 문학 서적을 전문적으로 출판했던 출판사들도 흔히 발견되는 것을 보면 교과서 선정이 가져다주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이익이 정말 우리의 예상을 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과목 교사 전체가 모여 10개 이상의 교과서 선정 심사용 예시 본을 검토하고 각 분야별로 점수를 취합한다. 그 분야는 다섯 분야인데 교육과정, 학습내용, 교수학습, 내용 조직, 학습 평가 등 5개 기준을 각 20점 부여하여 총점으로 교과서를 선정하는 방식이다.(내가 담당하는 과목은 10명의 교사가 있어 각 교사의 점수를 합산하여 하나의 출판사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교과서 선정의 잡음을 최소화하고 흔히 말하는 ‘공정’과 ‘청렴’을 위한 절차일 것이다.
2. 학교의 혼돈(교과서와 관련한 여러 문제들)
각 교과의 교과서는 국가 수준 교육 과정에 따라 교육부가 검정 또는 인정(이하 검, 인정)한 내용을 출판사별로 약간의 편제와 서술 방식의 차이를 두기 때문에 사실 검, 인정을 통과한 어떤 교과서를 선정해도 큰 문제는 없다. 물론 일부 교과에 한정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역사 인식이나 시대 인식, 그리고 민감한 대외 관계 서술이 때로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문제 외에도 현장 교사의 관점에서 지금의 교과서 선정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점을 생각해 본다.
교과서는 교실수업, 즉 학생들과 교사의 학습활동에 기본이 되는 책이다. 교육과정에 맞춰 내용을 일관성 있게 서술하여 학생들에게 습득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책이다. 최근 이 교과서들이 본질적인 내용보다는 화려한 컬러 사진과 도판을 이용하여 교과서의 본질인 객관적 사실의 서술이나 소개보다는 시각적 자료에 집중하는 경향이 크다. 물론 지금 세대의 아이들이 시각적 자료에 반응하는 것을 잘 알지만 종이 책의 특성으로 볼 때 지나친 컬러 도판은 객관적 사실의 진술이라는 교과서라는 본질을 흐리게 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서술의 분량이나 내용을 줄이게 되면서 학생들에게 충분한 설명이 어려워지는데 이러한 교과서의 기본 역할이 참고서로 옮아가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아이들이 교과서로만 공부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지는 탓에 정말 필요에 의해 참고서를 보게 되었고, 나아가 관련 과목의 학원 수강까지 해야 하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교과서에 지나친 컬러 도판의 사용은 교과서 단가의 상승을 가져온다. 현행 교육과정에서 사용하는 교과서의 평균 가격은 2023년 기준, 약 10,000원 정도이다. 컬러를 사용하기 때문에 당연히 종이 질도 좋아야 한다. 이 또한 가격 상승의 주요한 원인이다. 교과서가 풀 컬러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3도 인쇄 정도만 해도 충분한데 이렇게 풀 컬러 교과서가 많아진 것은 여러 출판사들 경쟁의 영향이다. (비슷한 내용이니) 다른 출판사 교과서보다 더 튀어야 선정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내부적으로는 앞서 말한 시장 논리(교과서와 참고서 관계)도 틀림없이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2023년 교육 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고등학생 수가 약 126만 명 정도인데 1인당 교과서가 10~12권 정도라면 10,000원(교과서 1권 평균 가격)*10권(1인당 교과서 소유)*1,260,000명(전체 고등학생 수)=126,000,000,000원(1천2백60억 원)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이 금액에는 중학교나 초등학교는 아직 계산에 넣지 않았으니 모두 합하면 실로 엄청난 돈이 오가는 거래가 틀림없다. 다행인 것은 현재 초, 중, 고 교육이 거의 무상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이 돈을 직접 부담시키지는 않지만 어차피 세금으로 충당되어 국가 예산으로 교육부에서 이 돈이 각 출판사에 틀림없이 지급될 것이기 때문에 일단 교과서로 선정되는 순간 출판사는 상당한 기간 동안 역시 상당한 이익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것이다. 교과서로 선정되면 부가적으로 교과서에 따르는 참고서와 문제집, 그리고 인터넷 강좌까지 더하면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돈이 현재 교과서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디지털 교과서를 밀어붙이는 교육부의 의도가 이런 과정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기를 간절히 빈다. 왜냐하면 디지털 교과서 1년 치 구독료는 최소 5만 원에서 최대 10만 원이라니(매년 내야 하는 구조) 종이 교과서와는 차원이 다른 큰 금액이 오갈 것인데 그것이 교육적인가에 대한 평가는 여러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낙관적이지 않다. 사실 교육 선진국에서는 교수 학습 활동에 있어 탈 디지털이 새로운 흐름이 되어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 탭, 컴퓨터, 전자 칠판의 사용까지 일부 제한되는데, 오히려 우리 교육은 ‘미래교육’과 ‘에듀테크’가 혼합되더니 그것이 하이브리드가 되어 걷잡을 수 없이 교실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학교 교실, 그리고 교육은 국가나 권력의 실험 도구가 아닐 것인데 ‘에듀테크’의 거대 자본과 손 잡은 교육부의 일부 관료들, 일부 대학 교수들이 초, 중, 고 교실을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다. 초, 중, 고 교실에서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여전히 수업에 최선을 다하시는 선생님들과 그 수업을 듣고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이 있다. 초, 중, 고 교실에서 학생들과 수업 한 시간도 해 보지 않은 교육부의 관료들과 역시 대학에서 교육학을 연구하시는 교수님들이 만들고 강제하여 펼쳐 놓은 혼란, 이를테면 고교학점제와 기타 제도들로 학교는 난장판이 되어 있는데 거기에 다시 디지털 교과서까지 혼란을 가중시켜서는 참으로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