坐忘*(완벽한 無의 세계로 돌아 간 엄경근을 위해)
無緣沒底心 (무연몰저심) 까닭 없이 마음 바닥에 가라앉으니,
難吸由想切 (난흡유상절) 숨쉬기 어려워 생각조차 끊어졌다.
旣消心中火*(기소심중화) 이미 마음에 불은 꺼졌으니,
今希進滅定*(금희진멸정) 이제 멸정으로 나아가기를.
2024년 11월 15일. 흐린 날처럼 마음도 흐리다.
마침내 마음에서 엄경근을 슬며시 떠나보내다.
바닥까지 내려앉은 마음을 추스르는 일은 몇 개의 과정을 거쳐야만 된다. 마치 새로운 물건을 만들거나, 새로운 일을 시도했을 때처럼 실수를 줄이고 좀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하여 단계를 거쳐야 되는 것과 같다.
원인 없는 일은 없다. 하여 바닥으로 내려간 이유를 스스로 밝히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의 경과에 따르는 내 마음의 최근 행로와 주위의 모든 일을 바둑이 끝나고 다시 되짚어 보듯, 하나 둘 복기復碁해 보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과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왜 과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부족하게 된 것인지 그 얇은 마음의 차이도 알게 된다. 시간이 필요한 이 과정은 아무래도 일상적인 일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주말이 적합하다.
내부적인 원인, 이를테면 나의 의지 때문에 생긴 일이 밝혀졌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외부적인 것이다. 당연히 외부의 작용은 나의 의지와 매우 밀접한 함수관계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외부적인 것을 소홀히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나의 의지가 매우 작았음에도 상대적으로 큰 반작용이 있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외부적인 변화와 작용점, 시간의 경과에 다른 추이,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나의 반응까지를 살펴보고 나면 지금 내가 왜 이곳에 도달했는지가 어슴푸레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끝났을 때 언제나 내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문제는 ‘기대 가능성’이다. 이 기대 가능성은 나 자신으로부터 외부의 여러 부분에 이르기까지 모두 적용될 수 있는 문제인데, 문제의 핵심은 스스로 기대가능성을 높이 설정하는 것이 문제다. 현실의 대부분은 기대보다는 거의 낮은 수준으로 일들이 이루어지는데, 미세하고 작은 격차가 나에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기대 가능성을 아주 낮게 설정해 두면 여러 가지 문제는 발생할 가능성은 확연하게 줄어들지만 삶의 의욕이나 에너지, 그리고 일상의 희망도 함께 줄어들기 때문에 가끔은 무력증으로 빠져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대 가능성은 양날의 칼이다.
오늘처럼 흐린 날, 내려앉은 나의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지난 몇 주, 아니면 다만 지난주 동안의 내 삶의 여러 가지 일들을 반추反芻해본다. 하여 문득 늦은 오후를 지나 밤이 되어 명료해졌다. 결국 문제는 내 속에서 자라거나 또는 쇠락해 간다.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나의 마음자리를 다시 한번 절감하면서 내부에 존재하는 ‘나’와 외부에 드러나는 ‘나’는 서로에게 가면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짙어진다.
가을은 이제 여러 면으로 스러지고 있다. ‘가을’이라는 것 또한 ‘계절’이라는 것과 ‘시간’이라는 것이 서로에게 보여주는 가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흐린 금요일 오후, 사물의 실체를, 그리고 나의 실체를 보려 하지만 나의 눈은, 한 없이 어둡기만 하다.
* 열반: 마음속에 타고 있는 불이 꺼진 상태를 말한다. ‘베다’에서는 호흡을 이렇게 설명한다. 찬 공기를 빨아들여 따뜻한 공기로 만드는 것은 우리 안에 불 때문이다. 음식의 소화도 우리 안의 불이 음식을 태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적으로도 비슷한 말이다. 여기서 불이 꺼졌다는 말은 육신의 죽음을 말한다.
* 멸정: 멸정(산스크리트어: nirodha-samāpatti)은 상수멸정을 뜻한다. 상想, 즉 생각과 수受, 즉 감각의 소멸, 마침내 느낌의 중지(소멸)를 그리고 본래 아무것도 없던 시점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