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고르(3)
1. 키르케고르의 논리 전개 방법
B. 객관적 진리와 주관적 진리
『Concluding Unscientific Postscript to Philosophical Fragments』[1]는 키르케고르가 요하네스 클리마쿠스(Johannes Climacus, Anti-Climacus:사다리를 오르는 요하네스)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책이다.여기서 그는 객관적 진리와 주관적 진리의 차이를 설명한다.
객관성(Objectivity, 객관적 진리)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편성이다. 이를테면 보편화된 지식이 대표적인 예시다. 이들은 명제 자체의 참, 거짓이 있을 뿐, 그것을 알거나 이해하는 자(그 지식을 대하는 상대)의 상황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즉 그 지식을 대하는 자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당연히 객관성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것들에는 역사, 과학 등이 있는데 사변 철학(speculative philosophy)[2]도 그 한 분야로써 이들은 오로지 객관적인 지식에만 관심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언제나 새로운 의심에 의해 도전 받고 동시에 개진된다.
여기서 키르케고르는 실존이 객관적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한다. 키르케고르는 실존을 이렇게 비유했다. “잔에 든 맥주를 다 마시고 난 후 빈 잔 속에서 발견한 개구리 한 마리” 또는 “실존은 가능한 모든 분석을 다 마친 후에도 남아 있는 ‘무리수’ 같은 것”[3]도대체 개구리가 왜 맥주잔 속에 들어있는가? 이유나 논리가 있을 수 없지만 거기 개구리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키르케고르가 생각한 실존이다. 이는 하이데거가 제시한 피투彼投(Geworfenheit)[4]와 비슷하다. 어떤 논리적 법칙과 어떤 철학적 사유로도 실존의 문제를 설명해 낼 수는 없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명제조차도 ‘내가 존재한다’는 것과 나의 실존은 다른 문제이다. 실존은 반드시 사유를 필요로 한다. 이를테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사유되는 것이 실존이다. 그런가 하면 존재는 사유가 필요 없다. 그저 여기 저기에 위치하며 공간을 점유할 뿐이다. 책상이나 의자가 존재하듯이 데카르트의 ‘나’도 다만 존재할 뿐이다.
이 책에서 키르케고르는 “진리는 주체성(주관적)”[5]이라고 이야기한다. 주관적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먼저 객관적 진리를 설명한다. 객관적 진리란 앞서 말한 것처럼 현실에서 추출한 참, 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형태의 진리로써 그것은 그 진리를 사고하는 주체와 그의 존재에는 무관심하다. 즉 ‘무엇(What)’이냐에 더 많은 관심이 있을 뿐, ‘어떻게(How)’는 관심 분야가 아니다. 객관적 진리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격파되며 재정립되지만 그것과 마주하는 존재에게는 어떤 변화도 있을 수 없다. 다만 그럴 뿐으로써 수용될 뿐이다.[6]
반면 주관적 진리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사고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 사고 안에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의 사고는 또 다른 종류의 반성, 구체적으로 내면성, 그리고 자신이 가진 사고의 반성을 갖는데, 그러한 행동은 스스로에게 속하고 다른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다.[7]즉 주관적 진리에는 객관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주관적 진리는 단지 방법만을 강조할 뿐이다.
주관적 진리는 늘 우리 속에 존재해왔지만 규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마치 앞서 이야기한 ‘무리수’나 ‘개구리’처럼 거기 있을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실존적 진리인 것이다. 이러한 진리에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 사실보다는 그 진리의 가치에 있고 좀 더 집중하면 그 가치의 바탕(근본)에 있다.
키르케고르는 주장한다. “모든 결단은 주체성의 산물이다.“ 즉 결정은 주체성으로 인하여 존재하며 그 결정에서 객관성을 추구하는 것은 오류라고 설명한다.[8]따라서 주관적 진리에서 파악되는 실존은 객관성의 결핍에 따른 위험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고뇌’와 ‘불안’이 그 대표적 위험물이다. 그 위험물은 오로지 스스로 감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주관적 사유에서 가치의 기초는 실존의 경험인데, 주관적 사유를 하는 존재들은 자신의 실존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는 이유는 사유의 대상(실존)이 경험으로부터 분리되어 추상화 되고 개념화 되어야 하는데 실존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으로서 완성된 경험일 수 없기 때문에 추상화도 어렵고 동시에 개념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키르케고르는 주관적 사유를 부정不定적 사유라고 생각했다.[9]
[1] Concluding Unscientific Postscript to Philosophical Fragments- 철학적 단편(간혹 ‘잔여물’로 번역하기도 함)에 대한 결론으로서의 비학문적 후서. 1846.에 기초하여 씀. 이 책은 이후 실존주의의 성경으로 불리게 됨.
[2] '사변 철학'은 경험적 증거보다는 이론적 사고와 추상적 개념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적 접근 방식을 말한다. 이 용어는 주로 존재, 지식, 가치, 의미와 같은 주제를 다루며, 이러한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와 논의를 포함한다. 사변 철학은 종종 형이상학, 윤리학, 인식론과 같은 분야와 연결되며, 인간 존재와 우주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탐구하기도 한다.
[3]『키르케고르 실존극장』 도널드 파머, 정영은 옮김, 필로소픽, 2024. 41쪽
[4]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진 존재라는 의미이다.
[5] “Truth is subjectivity” Concluding Unscientific Postscript to Philosophical Fragments, A Mimical-Pathetic-Dialectical Compilation an Existential Contribution Volume I, presented as "by Johannes Climacus, translated by Howard V. Hong and Edna H. Hong 1992. Princeton University Press. 95쪽.
[6]수 많은 과학적 진리들이 그 예이다. 언제나 새롭게 변화하지만 그 변화가 우리의 실존과는 전혀 무관하게 이루어진다.
[7]앞의 책 72쪽
[8]앞의 책 102쪽
[9]『키르케고르 실존극장』 도널드 파머, 정영은 옮김, 필로소픽, 2024. 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