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식 Nov 15. 2024

존재와 시간(12)

존재와 시간(12)


지시와 기호(Verweisung und Zeichen)


하이데거가 말하는 ‘지시(Verweisung)’는 영어로 번역 하면 ‘참조(Referral)’에 가깝다. ‘지시’는 목적 없는 모든 대상을 가리켜 보이는 것이라면 ‘참조’는 반드시 비교 대상이 존재하는 ‘지시’다. 즉 ‘무엇에 비하여~’, 아니면 ‘무엇과는 달리~’라는 전제가 존재한다면 지시보다는 참조에 가까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존범주에서 관찰해보면 모든 존재자의 바탕은 ‘가용성(Zuhandenheit)’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가용적 도구의 ‘가용성’은 전체 도구와의 비교, 연관 속에서 ‘참조(Verweisung)’되어 우리에게 설득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비교와 연관(즉 참조, 대부분의 책에서 ‘지시’라고 번역된)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 근거는 각각의 가용적 존재가 가지는 ‘기호(Zeichen=sign)’에 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기호의 근본 기능은 표시(Ausdruck=Expression)다.[1] 기호가 가지는 표시의 기능을 설명하는데 가장 적합한 것이 교통 신호등이다빨간 표시는 멈춤이다파란 표시는 진행이다차량과 사람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인식되는 표시다이 표시의 유용성은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바로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다빨간 신호등은 금지의 표시인데 나아가지 말아야 하는 것을 표시하고파란 신호등은 진행해도 된다는 표시이다. ‘진행과 금지는 본질적으로 현존재의 세계--존재의 유지와 제한에 속한다.[2](즉 진행과 금지는 생명과 연관되면서 상호 비교된다.)  


세계-내-존재의 실존론적 해석은 현존재가 살고 있는 양식이라고 앞서 이야기 한 바 있다. 이것에 따라 ‘기호’와 ‘참조(지시)’의 상호관계를 생각해 보자. ‘기호’를 참조한다는 것, 즉 그 ‘기호’의 ‘참조(지시)’를 따른다는 것은 각 기호에 나타난 ‘참조(지시)’를 따라감으로써 현존재의 주변 세계(현존재의 실존 범주)가 열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기호’가 실존 범주 내의 ‘가용성(Zuhandenheit)’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기호’는 단지 방향성으로써 하나의 도구처럼 그 도구 전체를 현존재의 시야에 밝힘으로써 가용적 존재의 세계-내 존재의 타당성을 현존재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를 테면 기호가 참조되는(지시하는) 것은 현존재가 실존 범주의 존재를 구체화 시키는 것에 도움을 주어 그 구체적 존재를 만나게 하는 가장 적합한 도구인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호가 근본적으로 언제나 표시하는 것은 현존재인 자신이 살고 있는 그곳(worin=그 안에서)이며 그곳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Bewandtnis=’사정’이나 ‘상황’)를 찾을 수 있게 해 준다.”[3]

   

[1] SZ 11판, 1967. 77쪽.


[2]세계-내-존재의 실존론적 해석이 현존재가 살고 있는 양식이라고 규정했을 때 ‘진행’과 ‘금지’는 바로 현존재가 유지하는 삶의 방식이라는 이야기다.  


[3]SZ 11판, 1967. 80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