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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5 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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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Dec 05. 2024

만추

晩秋


紅葉彰權化無爲*(홍엽창권화무위) 붉은 잎은 무위의 현신이라, 

空寂離觀別變化 (공적리관별변화) 차이와 변화를 떠나 고요하네.

萬物作化爲神明 (만물작화위신명) 만물의 변화는 영묘 함이라,

髑髏見夢說王樂*(촉루견몽설왕락) 빈 해골 꿈에서 왕의 즐거움을 말하네.


2024년 12월 5일. 거의 매일 점심시간을 이용한 학교 뒤 비봉산 산행은 소소한 즐거움이다. 시간의 변화를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삶과 계절의 변화, 나아가 내가 실존하는 이 지극한 공간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가을이 짙어지니 보이는 것은 모두 쇠락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쇠락은 변화의 단면일 뿐이다. 변화는 나의 본질이며 나아가 우주의 본질이다. 변화는 시작도 끝도 없다. 다만 변화는 나의 실존이 확인된 이후의 이야기일 뿐이다. 


* 권화權化: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해 나타나는 것. 권현權現, 화신化身으로도 표현.


* 『장자』 ‘지락至樂’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장자’가 초나라를 지나는데 속이 빈 해골이 앙상하게 마른 채 모양만 남아 있는 것을 보았다. ‘장자’는 가지고 있던 말채찍으로 그 해골을 툭툭 건드리며 이야기했다. 


“그대는 과도하게 生의 욕망을 추구하다가 道理를 잃어서 이 지경이 된 것인가? 아니면 그대는 나라의 멸망을 만나 죽었거나 도끼로 도륙당하는 형벌에 처해져 이렇게 된 것인가? 혹시 그대는 좋지 못한 짓을 저질러 부모와 처자에게 치욕을 남기게 된 것을 부끄럽다고 자살하여 이렇게 된 것인가? 아니면 그대는 추위와 배고픔의 환난을 만나서 이렇게 된 것인가? 아니면 그대의 수명이 다해서 이렇게 된 것인가?” 


그 이야기를 하고 난 그날 밤, 꿈에서 낮에 툭툭 친 그 해골의 주인공이 ‘장자’의 꿈에 나타나 “그대의 이야기는 마치 변사의 이야기처럼 달변이다. 그런데 그대가 이야기한 것들을 살펴보니 모두 산 사람의 걱정거리인데, 죽게 되면 이와 같은 괴로움이 없다. 그대는 죽은 자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겠는가?”


‘장자’가 이야기를 듣겠다 하니 해골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죽음의 세계는 위로 군주가 없고 아래로 신하가 없으며, 또한 계절에 따라 쫓기는 일도 없다. 자유롭게 천지자연의 장구한 시간을 봄가을로 삼으니 비록 천하를 다스리는 왕의 즐거움이라 할지라도 이보다 더 즐거울 수가 없다.”


‘장자’가 믿지 못하는 표정을 보이며 해골을 비꼬듯 이렇게 이야기를 던졌다.


“내가 수명을 관장하는 신으로 하여금 다시 그대의 육체를 살아나게 해서, 그대의 뼈와 살점과 살결을 만들고, 그대의 부모와 처자와 동네의 知人들에게 돌려보내도록 할 테니, 그대는 그것을 바라는가?”


그러자 해골이 기분이 상했다는 듯 이맛살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찌 왕 보다 더 큰 즐거움(이 죽은 이후 세계의 즐거움)을 버리고 다시 인간의 괴로움을 반복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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