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존재와 시간(14)

by 김준식

존재와 시간(14)


데카르트와 하이데거의 세계성 비교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의 연장(延長[1] extentio엑스텐시오)


데카르트의 세계 개념에 의하면 각 존재들은 ‘연장(extentio)’과 ‘사유(cogito)’를 그 속성으로 한다. 연장은 물체(res corporea)에서 우연적인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남는 마지막 성질이다.[2] 연장은 높이, 길이, 넓이로 규정된다. 이렇게 규정된 것을 ‘실체(實體, Substance)’라고 한다면, 사유는 실체 없음이므로 실체는 연장과 사유의 중요한 구별 기준이 된다.


데카르트의 실체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으로부터 비롯된 중세의 실체론이 정리된 스피노자의 실체론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 제1부 - 신에 대하여 중 실체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정의 3. 나는 실체란 자신 안에 있으며 자신에 의하여 생각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정의 4. 나는 속성이란 지성이 실체에 관하여 그 본질을 구성하고 있다고 지각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정의 5. 나는 양태(樣態)를 실체의 변용으로, 또는 다른 것 안에 있으면서 다른 것에 의하여 생각 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정의 6. 나는 신을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 즉 모든 것이 각각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무한한 속성으로 이루어진 실체로 이해한다.[3]



여기에 나타난 실체를 요약하면 ‘자족성’이다. 즉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스피노자는 본질을 “그것이 없으면 사물이, 그리고 반대로 사물이 없으면, 그것이 있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데카르트가 이해한 존재(혹은 존재자, 극단적으로 실체)는 앞서 설명한 가용적 존재자[4]가 아니라 그리스 이래로 유지되어 왔던 ‘존재(ousia)’[5], 즉 자연적 존재자이다. 데카르트는 이것을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남아있으며 수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파악했다. 이런 존재자를 파악하기에 적합한 인간의 사유는 경험적 감각(sensatio)을 제거한 지성(intellectio), 혹은 오성(wisdom)[6]이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점에서 세계, 가용적 존재자, 현존재에 대한 데카르트의 이해는 그리스 이래의 전승에 구속되어 있을 뿐, 현존재의 근본적인 질문은 거의 제기하지 못한 채 지나치고 말았다.



[1] 延長의 사전적 의미는 “길이나 시간, 거리 등을 본래보다 길게 늘리다.”이다. 데카르트의 연장도 비슷한 의미이다. 이를테면 데카르트에 있어 연장이란 물질의 본질적 속성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물질의 본질은 순수하게 기하학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극단적으로 연장은 너비(étendue)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Principia Philosophiae(철학의 원리), 데카르트, 샤를 아담과 폴 탄네리 공편, 소두영 옮김, 2016. 192쪽




[2] 『존재와 시간 강의』 소광희 지음, 문예출판사, 2003. 74쪽




[3] 『에티카』 스피노자, 강영계 옮김, 서광사, 2018. 48쪽




[4] 지시에 의해 그 가치가 부여되며 전체성과 적소성을 가진 존재




[5] 고전 그리스어 'οὐσία (우시아ousia)'에서 유래한 어휘로, '만물을 이루는 근본적인 것'을 뜻함.




[6] 오성(悟性 Wisdom, Understanding, Rationalism) 분별력 혹은 이해력으로 해석되며 감성 및 이성과 구별되는 지력(知力)을 의미함. 칸트 철학에서는 감성의 대상에 대한 개념화 능력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