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존재와 시간(20)

by 김준식

존재와 시간(20)


- 현존재와 말, 그리고 언어


하이데거는 말과 언어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언어의 실존론적-존재론적 기초는 말이다.” 즉 말을 통해 언어가 구축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말이 밖으로 말해지고 있음이 곧 언어다”[1]라고 설명한다.


이 말은 이렇게 풀이할 수 있다. 언어가 우리 앞에 놓일 때(즉 들음= ‘des Redens’을 통해), 단어로 분해될 수 있다. 단어들은 말에 의해 들리게 되어 결국 말은 실존론적(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는)으로는 언어일 수밖에 없다.


말은 말함(발성)으로 열리는데 구체적으로는 ‘무엇에 대한 말함’과 ‘말해진 것’[2]으로 나눌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명령이란 ‘무엇에 대해 내리는 것’이고, 희망도 역시 ‘무엇에 대해 가지는 것’이다. 말은 이런 형식을 피할 수 없다. 이유는 자명하다. 즉 말이란 현존재의 근본적인 구성 틀을 전제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말해진 것’은 무엇에 대해 말함의 결과로써 이미 ‘전달(함께 나눔)’[3]된 것이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전달이라고 해서 말한 주체의 내면에 있는 특정한 체험이나 소망 등이 다른 주체의 내면으로 이동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전달이나 함께 나눔의 의미는 단지 이해의 수준에 머물 뿐이다

.



- 잡담


하이데거에게 있어 모든 사태(事態, die Situation)는 대단히 정교하고 치밀하며 충분히 구조화된 것이다. 그에게 보여지는 모든 현상은 반드시, 그리고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했는데 우리가 흔히 나누는 잡담(Das Gerede)[4]도 예외는 아니다.


먼저 하이데거는 잡담을 일단 이렇게 규정한다. “일상적 현 존재의 해석과 이해의 존재양식을 구성하고 있는 긍정적(적극적) 현상”[5]이다.


잡담을 통해서 현 존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함께 잡담이 거의 필연적으로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먼저 밝히고 있다. 그다음 과정으로 말과 언어에 대한 하이데거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말은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즉 밖으로 말해질 때는 이미 그 내부에는 이해와 해석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해는 현 존재에 대한 이해이며 해석 역시 현 존재에 대한 해석을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밖으로 말해진 그 자체는 현 존재 자신이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말은 현 존재의 본질적인 존재 구성 틀에 속하고 동시에 현 존재는 세계를 향해 열어 밝혀져 있다는 것이다.


밖으로 말해진다는 것은 함께 나눔[6]을 전제로 한다. 역시 밖으로 말해진다는 것은 세계에 대한 이해인데 세계에 대한 이해란 타인, 즉 공동 현 존재(자기 자신을 포함한)의 참가를 겨냥하는 것으로서 이들의 관계는 지극히 동일한 평균성을 가진다고 하이데거는 생각하였다.


하이데거는 말로 표현된 존재, 또는 말로 표현된 사태, 즉 언표言表들은 진실함과 사태적합성을 가지고 있으며 잡담은 누군가 먼저 퍼뜨려 말하고 그것을 뒤따라 말하는 방식이라고 보았다. 즉 하이데거는 잡담의 속성을 일종의 ‘베껴 씀’ 정도로 이해한다. 자연스럽게 존재자는 은폐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잡담을 무지반성(근거 없음)으로 판단한다. 즉 잡담은 사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도(경험이나 냉철한 자기 분석과 비판 없이) 모든 것을 이해할 가능성을 부여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잡담은 공공성 안에서만 존재하여야 한다고 믿었다. 마침내 하이데거는 이렇게 정리한다. “잡담은 세계 안에 존재자인 자신을 은폐하거나 닫아버릴 수 있는 위험성도 존재한다”[7]라고 생각했다. 달리 표현하면 특정한 방식으로 세계로 열어 밝힌 현 존재의 가능성의 뿌리를 뽑을 수 있는 현 존재의 이해 방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1] Sein und Zeit, M. Heidegger, 이기상 역, 까치, 1998. 222쪽.




[2] ‘어떤 것에 대해 말함= Worüber der Rede’, ‘말해진 것= Schweigen’(본래 Schweigen은 침묵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말해진 것이기 때문에 이 표현을 사용




[3] Mitteilen= 함께 나눔 곧 전달




[4]우리가 흔히 하는 빈말과 같은 의미




[5] SZ 11판, 1967. 167쪽.




[6]여기서 나눔은 일종의 전달의 의미이다.




[7] Sein und Zeit, M. Heidegger, 이기상 역, 까치, 1998. 233쪽.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