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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통령이 있는 나라 (1)

선거가 끝난 다음날 아침.

by 김준식


선거가 끝나고 나는 평소보다 일찍 잠을 청했다. 선거 결과는 이미 출구조사로 알게 되었고 그 자세한 표의 향배는 사실 나의 관심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다. 미친 ‘홍’이 이 갱상도 땅에서 얼마만큼 득표하는지를 구태여 시간을 소모하여 볼 필요는 없었다.


아침이 되고 비가 그친 탓인지 공기는 매우 좋았다. 그리고 바람도 불어 시원했다. 계절의 여왕 5월 아침 날씨다운 아침, 나는 새로운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잠을 깬 것이다. 비록 내가 깬 시간에는 임기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내가 사는 나라에 제대로 된 대통령이 있다는 것이 참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대한민국에서 5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나는 8명의 대통령을 보아왔다. 그리고 그중 내가 대통령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딱 두 명뿐이다. 그리고 이 아침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은 아마도 내 마음속 세 번째 대통령이 될 공산이 크다. 사실 우리 같은 민초들에게 대통령이 누구인가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다만 대통령이 된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생각으로 국민을 대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마치 일상을 유지하게 하는 공기처럼 가슴으로 그리고 피부로 느낄 뿐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분명하게 대통령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이야기한 대통령이라고 해서 그렇게 큰 기대를 걸진 않는다. 해방 이후 쌓인 이 나라의 적폐가 어디 몇 년 만에 해결될 것인가? 다만, 지나온 세월 잘못된 흔적과 문제점을 적폐로 보고, 그것을 개선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대통령이 우리는 필요했을 뿐이다. 큰 기대는 큰 실망을 낳는다. 새로운 대통령이 자신의 능력 범위에서 적폐를 청산하고 또 다음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그 적폐들을 치워줄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교사인 나로서 정말 작은 바람이 있다면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의 문제, 즉 인문계 고등학교 1학년의 삶이 조금 나아지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 그들은 하루 14시간의 학교 생활(오전 8시~오후 10시)도 모자라 학원을 갔다가 집에 가는 그야말로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게 노력해서 가는 대학은 엄청난 등록금이 기다리고 있고, 또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라는 괴물과 싸워야 하는 이 기막힌 구조를 어떻게라도, 정말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새 정부에서 만들어 지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곧 우리 사회의 오랜 구조를 혁파하는 것일 테고,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기성세대의 의식조차 바꿔야 하는 거대한 문제일 것이다. 하여 어렵고 심지어 불가능해 보이 기조차 한다. 하지만 시작은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학교가 행복한 삶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학교에서 하루를 보내고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복잡함은 잠시 접어 두고 이 아침, 나는 새로운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학교로 향한다. 새로운 대통령이 좋은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간절히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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