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시간(24)
1) 죽음
현존재의 죽음은 독자적이고 분명하며 무규정적인, 그리고 타협불가능하며 뛰어넘을 수 없는 명백한 가능성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당연히 죽음에 이르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죽음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동시에 스스로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현존재는 죽음을 통해서만 전체성이 확보될 수 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누구도 죽어볼 수는 없으니 그저 간접 경험을 통해 접근하고 거기에 기초하여 추론할 수 밖에 없다.
다른 사람(=타자, 공동 현존재)의 죽음을 통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죽음은 궁극적으로 각자의 것이라는 당연한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현존재는 ‘죽음에 이르는 존재(Sein zum Tode)’ 혹은 ‘종말에 이르는 존재(Sein zum Ende)’라고 하이데거는 규정한다. 현존재의 전체성[1]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죽음 이후의 시간을 고려해야 하는데 죽음 이후의 시간을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니 하이데거는 이 문제를 ‘죽음에로의 선구(Vorlaufen zum Tode)’라는 다소 애매한 표현을 쓰고 있다.
(1) 미완(Ausstand), 종말(Ende), 전체성(Ganzheit)
하이데거는 죽음에 대하여 다음 세 가지의 주장을 펼친다. [2]
⒜ 현존재에게는, 그가 존재하는 한, 그가 [앞으로] 존재하게 될 어떤 '아직 아님', 즉 부단한 미완이 속한다.
⒝ 각기 그때마다 '아직 종말에 이르지 않은 자'의 '종말에 이름(미완을 존재에 맞추어 제거함)'은 더 이상 현존재가 아님[더 이상 거기에 있지 않음]이라는 성격을 가진다.
⒞ 종말에 이름은 그때마다의 현존재를 단적으로 대리할 수 없는 그런 어떤 존재양태를 자체 안에 포함하고 있다.
⒜에서 ‘아직 아님’은 현존재가 아직은 죽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미완(Ausstand)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에 대해 하이데거는 아래와 같이 매우 친절하게 예를 들어 설명한다.[3]
즉 본래 ‘Ausstand’의 뜻은 ‘채무의 미 회수’, ‘만월이 되기까지의 달의 검은 부분’, ‘과일의 미숙’이라는 뜻이다. 첫 번째, 채무의 미 회수는 미수금이 회수되어 채무액과 같아지면 ‘아직 아님’이 제거된다. 두 번째 만월에 이르지 못한 것은 달에 대한 지각작용의 문제일 뿐이다. 세 번째 과일의 미숙은 성숙과정에서 불가결한 것이므로 과일로부터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반드시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성숙해지는 순간 ‘아직 아님’은 역시 제거된다.
하지만 현존재에 있어서는 미완이라는 의미는 매우 상대적이다. 즉 위 사건이나 전재자의 상황과 같이 충족되는 순간 현존재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끝없는 미완으로 존재하면서 종말이나 죽음에 이르는 존재일 뿐이다. 그런 이유로 하이데거는 다시 이렇게 설명한다.
“존재하는 한, 현존재는 부단히 이미 자신의 '아직 아님'으로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존재는 이미 언제나 자신의 종말에 있기도 하다. 죽음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끝남은, 결코 현존재의 끝이 아니라. 이 현존재가 종말에 이르는 존재(Sein zum Ende)라는 것이다. 죽음은 현존재가 존재하자마자 그 현존재가 인수한 하나의 존재방식이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죽기에 충분할 만큼 늙어 있다.[4]”[5]
‘아직 아님’으로 남아있다는 것은 현존재가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는 의미이며 설사 이 ‘아직 아님’이 채워진다 해도 그것은 현존재의 죽음과 같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아직 아님’이 채워진다는 것은 완성의 의미가 있지만 죽음은 세계에서 제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1]현존재의 삶 자체를 하나의 객관적 대상물로 삼았을 때의 전체성. 그러나 현존재는 죽음이라는 사태를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2] SZ 11판, 1967. 242쪽
[3]『존재와 시간 강의』 소광희 지음, 문예출판사, 2003. 158쪽
[4] Der Ackermann aus Böhmen(『보헤미아 출신의 농부』), A. Bernt와 K. Burdach 편(중세에서 종교개혁까지. 독일 교육사 연구, K. Burdach 편, 제3권, 제2부), 1917, 제20장, S. 46.
[5]앞의 책 2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