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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5 지락

2025, 지락의 서문을 쓰다.

by 김준식

한시집 지락의 서문을 쓰다.


2025년 한시집 제목은 지락이다.


『장자』 제18편의 제목이다. 지락至樂은 제1장의 첫 번째 句인 ‘천하유지락天下有至樂’에서 ‘지락’ 두 글자를 취한 것이다. 뜻은 ‘더 以上이 없는 최고의 즐거움’을 말한다. 이 '지락至樂'에서 '무위無爲'의 '처세處世'가 인간에게 '지락至樂', 즉 최고의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을 말하고 있으니 '무위無爲'야 말로 곧 '지락至樂'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8월 말로 나의 교사로서의 일상이 멈추게 된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고전 물리 법칙인 관성의 법칙이 내 삶에도 작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이작 뉴턴은 그의 책 프린키피아 제1권 물체의 움직임 맨 처음에 "공리(公理, axiom), 즉 운동 법칙" 중 제1 법칙을 이렇게 표현했다.


“물체에다 힘을 가해서 그 상태를 바꾸지 않는 한, 모든 물체는 가만히 있든, 일정한 속력으로 직선 운동을 하든,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한다.”(프린키피아-자연과학의 수학적 원리, 뉴턴, 이무현 번역, 교우출판, 2018, 17쪽) 이것이 관성(慣性, inertia)의 법칙으로 뉴턴의 운동 법칙 중 제1법칙이다. 사실 뉴턴은 ‘관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Ref. Everybody perseveres in its state of rest, or of uniform motion in a right line, unless it is compelled to change that state by forces impressed thereon.- 영 번역)

(Corpus omne perseverare in statu suo quiescendi vel movendi uniformiter in directum, nisi quatenus a viribus impressis cogitur statum illum mutare. 라틴어 원문)


나를 멈추게 하는 것은 법이다. 그리고 나는 그 법에 따라 멈춰야 한다. 그리고 무위의 세계로 나아가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이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정년 이후, 분명 물리적 운동 법칙을 위배하는 일들이 나의 일상에 수 없이 일어날 것이고, 나는 하염없이 영향받을 것이며 즐거움과는 거리가 먼 또 다른 일상을 하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관성이라는 영어 표현 ‘inertia’는 17세기 독일 천문학자이자 의사인 요한 케플러(1571-1630)가 물리학 용어로 처음 사용하였다. 라틴어 ‘inertia’의 본래 형태는 ‘iners’로써 미숙함, 무지의 뜻과 함께 활동 없음 또는 게으름을 말한다. ‘Inertia’는 ‘iners’의 속격이다. 그로부터 뜻이 분화하여 ‘미숙련’ ‘비활성’의 의미를 마침내 ‘관성’의 의미로 케플러가 사용한 것이다. (뉴턴이 1643년 생이니 그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지락의 삶이 열리지 않을 것이 분명한 2025년 하반기이지만 그래도 지락의 꿈을 꾸며, 내 삶의 방향을 지락으로 향하게 할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무위無爲해야 한다.


6월이 시작되려는 지금 약 40여 편의 시를 지었다. 10월 말이면 다시 1년이 되니 다섯 달 남은 셈이다. 부지런히 짓고 또 써야 할 일이다. 무위는 치열한 유위와 다르지 않으며, 치열한 유위의 극한은 무위일 수밖에 없다. 한 없는 미분의 삶 속에 일어나는 극한의 변화를 기록하는 것이 나의 한시다. 동시에 나의 한시는 세상 일에서 이 만큼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자유의 공간이며, 세상에서 늘 미약한 내가 누릴 수 있는 거대한 자만自慢의 공간이기도 하다.


2025년 5월 23일 밤 중범 김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