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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아야 다 알 수 있다.

by 김준식

遠望可盡 멀리서 보아야 다 알 수 있다.


현실에 코 박고 있으면 역으로 현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당연한 이치다. 문득 현실을 저만큼 두고 볼 능력이 되었을 때 지금까지 코 박고 지내 온 자신이 보이고 더불어 좀 더 넓은 세상을 감지한다. 하지만 그 또한 더 넓은 세계에 비하면 여전히 코 박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를테면 범위의 문제는 한계가 없다.


선불교의 수많은 일화들은 바로 이 범위를 타파하는 이야기들이다. 달마에게 팔을 잘라 보인 혜가의 이야기로부터 혜능의 제자인 남악회양과 마조도일의 벽돌 이야기, 남전보원과 조주종심의 고양이 이야기에서 집착이나 아집이 얼마나 범위를 좁게 만드는 가를 알 수 있게 한다. 더불어 청원유신 선사께서 이야기한 見山只是山 見水只是水나 야보도천 선사의 山是山 水是水 佛在何處 역시 범위를 깨고 나온 거대한 이야기다.


하루 종일 책상 위에서 그 범위를 깨지 못하고 코를 박고 있다가, 오후가 되어 차 한 잔 하니 문득 내 범위가 찻잔 범위만 해 보인다. 원망가진은 그림을 보는 방법론이다. 세상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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