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그린 것인가?
하루 종일 미술관을 돌아다니는 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더군다나 아주 조심스러운 어른을 모시고 다니는 것은 더 피곤한 일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실 때는 시간과 관계없이 오래 보신다. 마치 그림 속 사람과 대화를 나눌 것처럼 매우 근접해서 보시다가 때로 아주 멀리 서서 보시기도 한다.
서양 그림과 동양의 그림은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서양 그림들은 아주 일찍부터 주문 제작의 방식을 취했다. 주문이지만 거의 명령이나 요구에 가까웠다. 절대 권위의 교회, 황제 그리고 귀족에게 주문받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사실 화가 자신에게는 엄청난 위험부담이 있다. 왜냐하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는 거기에 묘사되어야 할 당연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화면 속에서 그 인물의 상대적 크기나 위치, 시선 등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생사를 좌우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그렇게 주문 제작된 그림은 교회와 왕궁, 혹은 대 저택에 엄숙하게 설치 혹은 장식되었다. 이런 이유로 르네상스 시기가 되기 전까지 서양 그림에서 화가 자신이 스스로 그 그림을 그렸다는 표식을 하거나 혹은 어떤 방식이든 자신을 그림 속에 묘사하는 것은 권력에 대한 도전이나 신성모독으로 인식되었다. 이를테면 그림의 주문자가 곧 그 그림의 주인이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린 사람은 그림 속에 어떤 표식도 남길 수 없었다.
동양, 특히 중국에서도 춘추 전국 시대부터 그림을 그리는 특별한 신분이 존재했다는 근거가 '장자' '전자방'에 묘사되어 있다. 즉 권력자를 위해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동, 서양 모두 비슷했던 모양이다. 권력자가 그림을 그리게 한 것은 비슷하지만 그림의 대상은 서양과 달리 인물보다는 자연이었다. 대자연의 모습을 통해 권력자의 인품을 나타내고 동시에 깊이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따라서 얼마나 자연을 잘 묘사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실제의 자연을 넘어 관념 속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자연을 묘사하는 것을 최고의 경지로 판단하여 그것이 그림의 평가 기준이 되었다. 당연히 그림 안에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더라도 아주 작게, 혹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묘사되어 있다. 그저 자연의 일부 혹은 그림의 일부로 묘사되어 있다. 또 하나 서양의 그림과 동양의 그림이 크게 다른 것은, 그림을 보고 그 평론이나 감상을 그림 속에 화가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림의 빈 곳에 글을 쓰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떤 황제는 직접 자신의 감상을 그림에 쓰기도 했다. ‘화제시’라고 불리는 이런 형식은 동 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물론 동양에도 황제나 중요 인물의 인물화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 그림들은 매우 정형적인 그림이라 당대에는 그 그림에 대하여 미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한 참 하고 있는데 장자께서 손짓을 하시며
“여보게! 저 그림은 왜 얼굴만 그렸나?”
“자화상이라 그렇습니다.”
“자신을 저렇게 그림으로 그릴만큼 스스로가 비루鄙陋하단 말인가?”
“그게 아니라 자신을 더 당당하게 나타내려고 그린 것입니다.”
장자께서 얇은 미소를 띠며
“자신을 당당하게 나타내려는 순간 자신의 가치는 떨어지지! 진나라 사람 양주의 말처럼 자신을 내세우면 내세우는 만큼 다른 사람들이 좋지 않게 평가할 것인데……” (산목)
장자께서 지목한 그림은 다름 아닌 뒤러의 자화상이다.
신성로마제국이 아직은 프로이센으로 통합되기 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난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의 자화상은 사실은 보는 사람이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화면의 대부분을 얼굴이 가득 채우고 있고 동시에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정면을 응시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AD’라는 사인을 남겨 그가 그린 스스로의 얼굴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 그림을 처음 보신 장자께서는 지금 몹시 불편해하시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설명을 덧붙였다.
“서양에서는 이렇게 자신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그림이 많습니다.”
장자께서는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저렇게 나타내지 않을 때 오히려 다른 사람이 더 귀하게 생각하지 않겠나?”
짐짓 딴청을 피우며 대답했다.
“생각이 다른 것이겠지요!”
장자께서 고개를 번쩍 드시더니,
“생각이라…… 무슨 생각을 말함인가?”
아차! 대답을 잘 못했다. 어제저녁 잠들기 전에 생각 이야기를 잘못 꺼냈다가 한참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물쭈물 대답이 없자 장자께서 이렇게 정리하신다.
“노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강함이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더불어 부드러움을 지키면 만물이 모여들어 천하의 큰 골짜기가 된다고 하셨지! (천하) 저 뒤러라는 사람은 그것을 모르는 모양이야!”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뒤러의 자화상을 매우 멋지다고 생각해 왔다. 당당하게 자신을 나타낸 중세인의 저 용기와 태도, 그리고 나아가 자아실현의 예술적 표현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장자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지금까지 내 생각을 천천히 돌아본다. 동양의 낙성관지落成款識(줄여서 낙관)처럼 뒤러는 AD라는 자신만의 아이디를 창조해 낸 사람이 아닌가! 나는 여전히 뒤러의 천재성과 당당함을 높이 평가하는 쪽에 서고 싶다. 장자께서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일생 동안 전쟁의 참화 속에서 살아온 장자 입장에서 자신을 내세운다는 것 자체가 벌써 알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을 때 도가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생존 전략일 뿐,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조차 든다.
내가 불쑥 말했다.
“뒤러가 살았던 당시는 전쟁 중은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장자께서는 이렇게 방향을 틀어버리신다.
“저 사람은 틀림없이 마음이 고요하지 못했을 걸세!”
나는 약간 빈정거리듯 대답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한 참 고개를 들고 계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네는 그림 속에 있는 인물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진실로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다소 엉뚱한 방향의 질문을 하신다.
“네… 저는 같은 사람이라고 지금까지 믿어 왔습니다.”
“나는 아니라고 보네!”
“왜 그런지요?”
“만약 둘이 같은 사람이라면 굳이 저렇게까지 자신을 그려야 했을까?”
자신을 그리지 않은 자화상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