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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상식

by 김준식

페이스 북에서 ‘편견과 상식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보고 생각해 본다.


과연 편견과 상식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있는가…… 2021년 중학교 교장 시절 철학 수업 당시 중학교 아이들과도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오늘 다시 그 고민을 정리해 본다.


편견은 어떤 대상이나 집단에 대해 충분한 지식이나 경험 없이 한쪽으로 치우쳐서 형성하는 불공정한 생각이나 감정이라고 AI가 대답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먼저 충분한 지식이라는 부분이다. 충분하다는 말의 기준은 매우 모호하다. 목마를 때, 물 한 모금은 매우 충분하고 단돈 1원이 부족할 때, 1원은 충분한 돈이다.


AI가 어디서 이 문제를 학습했는지는 몰라도 아마 그 소스 자체가 심각한 오류를 가졌던 모양이다. 따라서 지금 수준의 AI가 말하는 편견의 정의 역시 심각한 편견일 수 있다. 그 외에도 ‘경험 없이~’라든가 ‘불공정한~’ 등의 표현은 지나치게 상대적인 용어이기 때문에 편향될 우려가 있다.


그러면 상식은 무엇인가? 역시 AI는 답한다. 특정 사회나 문화의 구성원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한다고 여기는 광범위한 지식의 총체, 그리고 어떤 일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서도 당연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사리 분별력이나 건전한 판단력이라고 대답했다. 매우 정교해 보이지만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보통’ , ‘총체’ , ‘당연히~’ , ‘건전한~’ 등은 가치 개입에 따라 뜻과 척도가 달라지는 전형적인 예다.


그러면 ‘편견은 상식이 될 수 없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나? 철학적 해석학의 대가 가다머(Hans-Georg Gadamer, 1900~2002)에 의하면 “이해는 본질적인 편견” (“Verstehen ist von Natur aus vorurteilsbehaftet”) (『Wahrheit und Methode』진리와 방법, 1960. 제2부 제1장 ‘역사성의 원리’ 참조)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편견을 통해 이해가 구축되고, 그 이해를 토대로 상식의 장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그는 계몽주의를 ‘편견에 대한 편견’으로 생각했을 정도다.


상식이라는 말이 가지는 위험성은 또 어떤가? 상식은 편견의 다른 모습이며 자기 확증 편향의 대중적 확산과 다름 아니다. 뿐만 아니라 시대성에 지배당하며 위에서 말한 편견의 편견, 그리고 그 편견의 편견을 고착화시키기도 한다. 오죽했으면 헤겔은 “상식은 철학의 진정한 적”(“Der gemeine Verstand ist der eigentliche Feind der Philosophie.”)이라고까지 이야기했다.


상식이나 편견을 구분하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고 더불어 구분의 실익이 거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편견과 상식은 언제나 우리 속에서 비슷한 비율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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