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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시리즈의 실패

캐리비안의 해적

by 김준식

영화 내용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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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뻔한 스토리

짙은 아이라인, 퀭한 눈빛, 치렁치렁 매단 장신구, 머리를 감싼 두건, 번쩍거리는 금니, 어정쩡한 걸음걸이 하지만 가끔씩 날쌘 동작, 어눌하지만 재치 있는 말투, 때로 놀라운 칼 솜씨 이 모두가 주인공 잭 스패로우(조니 뎁 분)의 특징이다. 조니 뎁에 의한 조니 뎁을 위한 조니 뎁의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5편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이제 조니 뎁도 어찌할 수 없는 진부함 자체가 되었다.


시리즈 영화가 가지는 나쁜 점은 많지만 그중 최악은 관객의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박탈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전편의 흥행에 의지한 너무 뻔한 이야기를 다시 우려먹는 것이다. 이미 4편 ‘낯선 조류’에서도 예상된 일이었지만 조니 뎁이라는 걸출한 배우도 이번 시리즈에서는 전혀 예측 가능한 인물이 되고 말았다. 오락 영화의 승패는 의외로 간단한 곳에서 결정되는데 그 간단한 부분은 영화에서 관객의 예측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일이다. 즉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사실을 영화적 표현으로 가능하게 하면 관객은 흥미를 보이고 그 폭이 커지면 커질수록 관객의 반응은 뜨거워진다. 물론 여기에 최소한의 논리구조를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이 예측 가능성이 너무 높아 다음 장면, 다음 이야기를 마치 알고 있는 듯 한 착각을 준다. 그만큼 우리는 이 영화의 문법에 익숙해져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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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악역의 실패

악당 ‘살라자르(하비에르 바르뎀 분)’는 전편의 악당들과 비교하여 기괴함은 더해졌지만 악역이 가진 멋스러움은 많이 줄어들었다. 이를테면 4편의 ‘검은 수염’이나 그 3편의 ‘데비 존스’처럼 악역이 가지고 있었던 카리스마와 깊이, 그리고 페이소스를 살라자르로부터는 읽을 수 없었다. 오직 복수의 화신이 된 살라자르에 대한 어떤 정서적 이해나 수긍이 없는 그야말로 단순 악인의 모습으로만 그려진다. 그렇게 되자 당연히 그 악역의 반대쪽에 위치한 ‘잭 스패로우’의 이미지는 상당 부분 희석이 되고, 오히려 오래전부터 영화에 등장했던 여러 악역의 조력자로서 역할을 하던 ‘바르보사(제프리 러시)’의 비중이 증가하는 기형적 구조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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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새로운 인물, 즉 해적 2세대의 등장은 이 시리즈를 계속 끌고 가려는 듯한 인상을 줌과 동시에 젊은 두 배우, 젊은 터너(월 터너의 아들, 브렌든 스웨이츠 분)와 바르보사의 딸 스미스(카야 스코델라리오 분)는 영화 내의 다른 인물들과 알 수 없는 괴리감만 느끼게 했다. 해적 영화는 해적이 주인공이 되고 해적처럼 싸우다가 해적처럼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데 갑자기 매우 전문적인 천문학과 엉뚱한 그리스 신화가 버무려지면서 스토리라인은 혼잡하고 엉성해지고 말았다.


4편에서 자취를 감췄던 윌 터너(올랜도볼룸 분)는 영화 초입 잠시 나타나더니 영화 마지막에 가서 또 잠시 모습을 보이는데 난데없이 연인 엘리자베스(키이라 나이틀리 분)가 등장하여 이것이 휴먼 드라마인지 아니면 액션 어드벤처인지를 파악할 수 없도록 영화적 서사를 흔들어 놓기도 한다.


3. 사족

조니 뎁의 젊은 시절을 보여 주는 프리퀄 장면은 지금까지 우리가 잭 스패로우를 그나마 사랑하게 만들었던 약간은 비어있고, 또 약간은 과도한 그의 특징을 상당 부분 훼손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감독의 의도야 충분히 이해가 된다. 잭 스패로우의 젊은 시절은 이런 정도였다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나 그것을 관객의 상상에 맡겨 놓았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젊은 잭은 빈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너무나 유능하고 완벽하며 카리스마 있는 선장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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