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전 화재 참사
화재로 14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뉴스 화면을 보니 불은 순식간에 번졌다. 아마도 피할 틈조차 없었을 것이다. 화재 사고에 취약한 건물구조와 작업환경은 단지 여기만 있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간은 안전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하고 나서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중대재해로 목숨을 잃는다. 아무리 법을 만들어도 그 법을 지키는 사람들의 인식이 높아지지 않으면 중대재해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
언제나 일이 생겨 누군가 죽고 다치고 나서 엄청난 대책이 등장하지만 곧 잊히고 노동자들은 중대재해로 다시 목숨을 잃는다. 원인이야 천 가지 만 가지지만 결정적으로 사용자들의 공감능력 부족이다. 모든 일을 내 경우로 생각하는 것, 그것이 일상화될 수 있도록 언제나 살피는 것인데… 하지만… 이것을 막는 자본의 논리가 있으니 참 요원해 보인다.
노동자들의 명복을 빈다.
2. 개구즉착
어제는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은 이미 내 선거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편안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친구들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노력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머리는 매우 복잡했다. 생각이 많아진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 '생각'이 곧 '번뇌'다. 생각에서 ‘각覺은 배울 학學과 볼 견見이 만난 회의 문자다. 즉 배운 것을 다시 반추해 보는 것, 좀 더 적극적으로 의역해보자면 경험했거나 이전에 한 번쯤 떠올렸던 것을 다시 꺼내어 보는 것이다. 볼 견見을 썼으니 의지를 가진 행위로 이해하여 배운 것이나 경험했던 것을 꺼내어 다시 보겠다는 것 까지가 覺의 의미다.
앞 글자 生은 그러한 각을 일으키는 인간의 의지를 말함인데, 이 覺을 일으키는 데 걸리는 시간을 불교에서는 ‘찰나刹那’라고 부른다. 찰나는 한자인데 범어 '크샤나'(kṣaṇa)의 음차로서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시. 분. 초의 개념으로 환산하면 찰나는 1/75초(약 0.013초)에 해당한다. (불교 경전 阿毘達磨大毘婆沙論 아비달마대비바사론의 내용을 기초로 하여 현대적 시분초로 계산) 즉 한 생각과 한 생각이 바뀌는 시간이 이렇게 짧으니 우리는 순간에도 수 없는 번뇌와 망상에 시달린다.
어쨌거나 불교에서는 이렇게 일어난 생각, 즉 념念(아주 짧은 마음)을 없애려고 하고 그것을 최고의 목표로 하여 수행하고 또 수행한다. 그 처음이 무념無念이고 다음이 무상無相이다. 완벽한 경지는 무주無住다.
생각이 없는 무념無念은 생각 속에 헛된 생각이 없는 것으로 번뇌에 시달리는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나아가 무념은 생각이 없다기보다는 자유롭게 생각하며 여러 대상과 접촉하는 생각의 다른 모습이다. 여러 대상과 접촉하면 보고 듣는 작용이 동시에 쉼 없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때, 그런 작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생각에 오염되지 않아야 비로소 무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무념에서 ‘無’는 잘못된 생각이 없는 것이다.(바른 생각은 분명히 존재한다. 바른의 정의는 모호하지만……)
무상無相에서 ‘相’은 망집으로 일어나는 허상虛像을 말한다. 즉 우리들의 생각인 상想이 마음 밖의 대상으로 실재한다고 착각하는 것이 상相이다. 그리하여 無相은 ‘상想속에 있으면서도 상相을 떠나는 것’이다. 즉 차별상差別相 속에 있으면서도 그 차별상을 공空으로 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갖가지 차별상과 모든 경계에서 집착을 떠난 것이 무상이다.
무주無住란 그 어느 것도 얻을 수 없고 그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마침내 집착이 사라지니 마침내 머물지 않는 것을 말한다. 생각이나 찰나에 머무는 것은 곧 속박이다. 따라서 모든 사태로부터 그리고 어떤 찰나에도 머무르지 않으니 속박은 없다. 그것이 바로 무주다. 부처의 경지다.
이렇게 '생각'을 생각하니 입으로 나오는 '말'이 떠 오른다. 생각은 거의 '글'과 '말'에 의해 옮겨진다. 이런 말이 있다. 개구즉착開口卽錯, 즉 입을 여는 순간 어긋난 버린다(틀린다)는 뜻. ‘말한 즉 곧 틀리게 된다.’ ‘입만 벌리면 잘못 말하게 된다.’ ‘입을 벙긋하는 순간 어긋난다.’ 대체로 이런 뜻으로 진리의 세계는 말로 표현하려면, 곧 입을 여는 순간 참모습과는 달리 빗나간다는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에게 나의 말을 적게 한 것이 참 다행이다 싶다. 내 생각이 말이나 글로 옮겨지는 순간 나도 어찌할 수 없게 된다. 선거철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개구즉착…!
3. BTS 공연
조선 왕조의 상징인 경복궁의 근정전 그리고 그 입구인 광화문 광장에 그들의 공연을 모든 언론사들이 앞다투어 보도한다. 서울의 중심부에 그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변방에 있는 우리는 뉴스로 소식을 듣고 OTT로 중계를 본다.(물론 나는 보지 못했다.)
서울시의 배려인지 아니면 대한민국의 배려인지는 알 수 없다. 나도 BTS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들이 대한민국 출신이라는 것과 그들의 나라 사랑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광화문 광장에서 있는 그들의 공연 소식을 이렇게 모든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들의 새 노래는 아직 귀에 덜 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