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남 관람기
왕사남! 나도 마침내 관람했다. 선거 때문에 주말도 일정이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아무런 일정이 없어도 영화 볼 생각은 못했는데 어제 누군가 “거기도 유권자들이 있다”는 말에 일요일 아침 선거복을 입고 영화관에 갔다. 영화를 보았으니 영화評을 하는 것은 일종의 의무에 가깝다.
1. 권력
권력은 나눠 가질 수 없으니 비정하다. 특히 왕권국가에서 왕권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하지만 왕과 피를 나눈 자들은 왕의 권력에 순응하거나 아니면 죽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그도 아니면 왕권을 두고 피비린내 나는 투쟁을 해야만 한다. 세계 모든 역사가 이 지점에서는 거의 일치한다. 하기야 왕권만 그런 것도 아니다. 모든 권력은 나눠 가지지 못한다. 분권은 일종의 이상일 수 있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도 권력은 언제나 초점이 있고 그 초점에는 막강한 권력이 있다. 다만 민주주의는 그 권력의 창출이 시민에 의해 이루어질 뿐이다. (교육감의 교육권력도 시민이 창출한다.)
영화의 구체적 내용은 우리가 잘 아는 단종의 슬픈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줄기로 하되 지금까지 우리가 잘 모르는, 아니 우리가 관심 가지지 못했던 이야기를 종횡으로 엮어 영화를 만들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설득력이 꽤 있었다.
권력을 뺏은 자들이 그 권력을 가졌던 자들에게 관용을 베풀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뺏은 것처럼 역으로 그 일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역사 속에서 우리는, 권력을 뺏은 자들이(본래 권력을 가졌던 자들보다) 자행하는 지독한 만행들을 자주 본다. 단종 이야기도 거의 같은 흐름으로 이해될 수 있다.
2. 배신과 출세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찬탈하자 이에 반대하는 즉, 단종의 복위를 위한 여러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사육신 사건이다. 사육신은 집현전 학사들로 세종의 신임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단종 복위를 주장하다가 실패하여 처형을 당한 사람들이다. 이 사육신들의 계획에 참여하였다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사건을 밀고한 자가 '김질'이다. 김질은 살아생전 좌의정까지 올라 배신의 덕을 충분히 맛보고 죽었으며, 역사의 역설인지 그의 자손 중 감자점은 훗날 인조반정 공신이 되었다가 이후 효종에게 핍박을 받자 청나라에 고발하려 하다가 마침내 역적으로 몰려 처형된다. 배신! 믿음을 저버리는 것이 배신이다.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 배신은 어디에나 있고 동시에 언제나 존재한다. 정치적 배신 이야기는 사실 유행가처럼 자주 듣는다. 사람의 일이기도 하고 동시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배신이다. 영화에서는 김질의 배신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가볍거나 무겁거나 배신은 배신일 뿐이다.
사실 한명회(유지태 분)는 조선 초기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인사 중에서 기회를 잡아 출세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가 계유정난 국면에서 보여준 놀라운 지략(?)은 세조의 마음을 사로잡아 7삭둥이로 태어난 그가 막강한 권력을 누리며 천수(72세)를 다했다. 물론 사후, 연산군 시절 고초를 겪는다. 일개 별궁지기에서 일국의 영의정까지 이르고 왕실과 혼인관계까지 맺었으니 출세를 위한 그의 노력은 후세 출세지향주의자들의 전범典範이 되었다.
3. 신뢰, 그 따뜻함.
유배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단종을 청령포에 보낸 것은 정확하게 부처付處에 가깝다. 즉 단종을 특정 지역에 지정해 두고, 그 안에서만 움직이도록 제한하였다. 한 때 왕이었다가 폐위되어 어린 나이에 홀로 유배를 당하고 마침내 죽음에 이른 과정을 영화적 상상력으로(스포일러일 수 있으므로 구체적 내용은 생략) 그렸지만 영화 속을 흐르는 핵심 주제는 시대와 공간을 넘어 존재하는 신뢰이며 그로부터 번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함이다. 개인적으로 유해진의 연기에 찬사를 보낸다. 단종 역의 박지훈, 엄태산 역의 김민 등의 연기도 매우 감동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