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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n 06. 2017

장자 외편 공부

노나라의 술맛이 없으니(魯酒薄)…….

노나라의 술맛이 없으니(魯酒薄)…….


도둑이 남의 물건을 훔치는데 도(道)가 있다고 한다면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지만『장자』 거협 편에는 도둑이 가져야 할 道가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다. 


跖之徒 問於跖曰 盜亦有道乎 跖曰何適而無有道邪 夫妄意室中之藏 聖也 入先 勇也 出後 義也 知可否 知也 分均 仁也.(도척은 『장자』 잡편盜跖에 등장하는 도둑의 이름이다.)


도척의 무리 중에 한 명이 도척에게 묻기를 “도둑에게도 도가 있습니까?”라고 하자 도척이 말하기를 “어딘들 道가 없는 곳이 있겠는가?” 하면서(다음과 같이 도둑의 도를 이야기한다.) “방안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이 성인이다. 먼저(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용기이고, (도둑질이 끝나고) 뒤에 나오는 것이 의리이다. (이 집을 도둑질할 것인지 또는 아닌지를) 아는 것이 지혜이며, (도둑질한 물건을) 균등하게 가르는 것이 인이다.”


이를 테면 ‘장자’는 도둑이 물건을 훔치는 매우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상황을 이용하여 도대체 우리가 道라는 이야기하는 것의 본질을 의심해 보자는 것이다. 더불어 그 道는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질문을 寓言을 통해 하고 있다. 누군가 무엇을 道라고 이야기하자면 그는 제법 성인의 반열에 있어야 하는데 그 성인의 반열에 놀랍게도 도척과 같은 도둑도 있다면, 또 그렇게 道가 이야기된다면 우리가 상정해 놓은 道와 그 道를 우리에게 이야기한 성인은 어떤 존재인가?


‘장자’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세상에 성인이 말한 도가 넘쳐 도척 조차 성인 행세를 하고 심지어 道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성인의 道는 세상을 편안케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척 같은 도적을 횡행하게 하여 세상을 더욱 어지럽히는 원인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장자’는 “성인의 도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은 적고 오히려 세상에 해롭게 하는 것이 많다”라고 잘라 말해 버린다.(則聖人之利天下也 少 而害天下也多) 그러면서 장자는 짐짓 전혀 인과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은 아주 작은 원인으로 하여 실제로는 매우 큰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즉 성인의 道가 난무하여 도둑조차 성인 흉내를 내고 심지어 도둑이 道를 이야기하는 것은, 더 중대한 결과를 가져와 결국 천하의 모든 것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 인과 관계없는 이야기가 바로 노나라의 술맛이다.(노나라의 술맛이 없어 ‘한단’<노나라의 수도>이 포위를 당했다.魯酒薄而邯鄲圍)


이 짧은 구절을 후대 당나라 시대 유명한 경학자인 육덕명은 그의 책 《장자음의(莊子音義)》에서 아래와 같이 풀이하고 있다.


楚宣王朝諸侯魯恭公後至而酒薄 宣王怒 欲辱之 恭公不受命 乃曰我周公之胤 長於諸侯 行天子禮樂 勳在周室 我送酒已失禮 方責其薄 無乃太甚 遂不辭而還 宣王怒 乃發兵與齊攻魯梁惠王常欲擊趙 而畏楚救 楚以魯爲事 故梁得圍邯鄲 言事相由也.


초나라 선왕이 제후들의 조례(조공)를 받을 때, 노나라 공공이 늦게 도착한 데다 바친 술마저 맛이 없자 선왕이 노해 공공을 모욕하려 했다. 그러자 공공이 명령을 받지 않고 말하기를 "우리 노나라는 주공의 맏이로 제후들의 어른이고 천자의 예악을 시행하며 주나라 왕실에 공훈을 세웠다. 내가 술을 보낸 것이 이미 실례한 것인데 바야흐로 술이 맛이 없다 하여 질책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고는 마침내 인사도 하지 않고 노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선왕이 노하여 마침내 군대를 출동시켜 제나라와 함께 노나라를 쳤다. 당시梁나라 惠王은 일찍이 趙나라를 치려고 했지만 楚나라가 趙나라를 구원할까 두려워서 하지 못했는데 초나라가 노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양나라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포위할 수 있게 되었다. 


노나라의 공공이 바친 술이 맛이 없는 아주 작은 사건이 기화가 되어 아무런 관계도 없는 조나라의 수도가 포위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도척이라는 도적들이 감히 道를 이야기하는 것은 성인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道를 이야기한 결과이니 차라리 성인도 필요 없고 道도 필요 없는 세상이어야 함을 장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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