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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n 12. 2017

졸렬함, 혹은 위대함.

혁명가 '장자'

혁명가 ‘장자’


『장자』를 읽다 보면 자주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혁명가이거나 무정부주의자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그가 남긴 이야기의 요체는 대부분 기존의 이분법적 사고를 혁파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그 조차도 넘어서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또, 정치와 권력자는 참으로 무용한 것이어서 그들 때문에 당시의 혼란이 왔으며 그러한 정치권력에 협조하고 그것의 정당성을 위해 헌신했던 공자를 여지없이 공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장자’는 우언(寓言)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우리에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그러나 방법적으로는 넌지시 드러낸다. 장자 胠篋편에는 ‘장자’가 생각하는 당시(전국시대)의 혼란은 지나친 논리와 이 논리를 이용하여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는 무리들(제자백가-대표적으로 공자의 유가 무리들) 때문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거대한 성인의 논리로 천하를 경영한다지만 그 천하를 통째로 도둑질해버리면 그 성인의 논리는 오히려 도둑질을 도운 꼴이 되고 만다는 것이 ‘장자’의 생각인 것이다. 


魚 不可脫於淵 國之利器 不可以示人 彼聖人者 天下之利器也 非所以明天下也(어불가탈어연 국지리기 불가이시인 피성인자 천하지리기야 비소이명천하야): 물고기는 깊은 물속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고, 나라의 이로운 기물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 저 성인이라는 존재는 천하의  매우 유용한 도구 인지라 천하에 밝게 드러내서는 안 된다.(혹여 그 자체가 도둑질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故 絶聖棄知 大盜 乃止 擿玉毁珠 小盜 不起 焚符破璽 而民朴鄙 掊斗折衡 而民 不爭 殫殘天下之聖法 而 民始可與論議(고 절성기지 대도 내지 적옥훼주 소도 불기 분부파새 이민박비 부두절형 이민 부쟁 탄잔천하지성법 이 민시가여론의): 그 때문에 聖을 끊고(성인의 도를 멀리하고) 知를 버려야(그 성인의 지혜를 버려야) 큰 도둑이 그칠 것이며, 보옥을 던져 버리고 구슬을 부숴 버려야 작은 도둑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부적을 태우고 옥새를 깨 버려야 백성들이 소박함을 회복하며, 됫박(도량형의 되)을 부수고 저울을 분질러 버려야 백성들이 다투지 않을 것이며, 천하의 聖法을(인의의 도) 없애 버려야 백성들이 비로소 의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가히 혁명적이다. 그러나 누구도 ‘장자’를 혁명가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혁명을 위한 그 어떤 행위나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한자로 혁명(革命) 이란 명을 바꾼다는 뜻인데 명은 곧 기존의 질서이며 그 질서로 구성된 체제이다. 이 체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엄청난 동력이 필요하다. ‘장자’가 살았던 시대는 절체절명의 전국시대로서 누구도, 또 그 무엇도 믿거나 의지할 수 없는 절망의 시대였다. 따라서 설령 ‘장자’가 혁명을 하고자 했다 하더라도 그러한 엄청난 동력을 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동시에 그러한 정황을 ‘장자’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장자’는 이 모든 상황을 초극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장자』 내편 <인간세>에서 안회가 위나라에 가는 것을 짐짓 공자의 이름으로 막으며 마음을 비우지 못했다고 얼버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우 특별한 재주를 가진 증삼, 사추, 양자, 묵자, 사광, 공수, 이주 같은 사람들은 존재조차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만약 정상적인 세상이라면 그들의 재주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장자’는 이야기한다. 이런 특별한 능력을 가진 몇 사람들의 능력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백성들 스스로 눈이 밝게 하고, 귀도 밝게 하며 동시에 지혜와 덕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또한 2300년 전 당시로서는 대단히 혁명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削曾史之行 鉗楊墨之口 攘棄仁義 而天下之德 始玄同矣 彼人含其明 則天下 不鑠矣 人含其聰 則天下 不累矣 人含其知 則天下不惑矣人含其德 則天下不僻矣 彼曾史 楊墨 師曠 工倕 離朱 皆外立其德 而以 爚亂天下者也 法之所無用也(삭증사지행 겸양묵지구 양기인의이천하지덕 시현동의 피인함기명 즉천하 불삭의 인함기총 즉천하 불루의 인함기지 즉천하부혹의 인함기덕 즉천하부벽의 피사 양묵 사광 공수 리주 개외립기덕 이이약란천하자야 법지소무용야): 曾參과 史鰌의 행실을 깎아 버리고 楊朱와 墨翟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양자는 극단적인 자기중심주의, 묵자는 극단적인 겸애주의) 인의를 물리쳐 버리면 천하의 덕이 비로소 하나가 될 것이다. 천하의 사람들이 본래의 밝은 눈을 간직하게 되면 천하가 녹아 버리지 않을 것이고(즉 천하가 제 모습을 유지할 것이고) 천하의 사람들이 본래의 밝은 귀를 간직하게 되면 천하가 얽매이지 않을 것이고(이런저런 논리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며) 천하의 사람들이 본래의 지혜를 간직하게 되면 천하가 미혹되지 않을 것이고 천하의 사람들이 본래의 덕을 간직하게 되면 천하가 치우치지 않게 될 것이다. 저 증삼과 사추, 양주와 묵적, 사광과 공수, 이주 같은 자들은 모두 밖으로 자신의 덕을 세워서 천하를 어지럽히는 자들이다. 참다운 규범으로서는 하나도 쓸모가 없는 존재들이다.

 

胠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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