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상곡
이 음악을 듣지 않고 여름을 보낼 뻔했다.
SCHUBERT "Nachtgesang"
Marchus Creed (conductor)
Scharoun Ensemble, RIAS-Kammer
Birgit Remmert (alto), Werner Gura (tenor), Philip Mayers (piano)
1. 숲 속의 밤 노래(Nachtgesang im Walde) D 913
2. 무덤과 달 (Grab undMond) D 893
3. 곤돌라의 뱃사공 (DerGondelfahrer) D 809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Gott ist mein Hirt) D 706
5. 현재 속의 과거 (ImGegenwartigen Vergangenes) D 710
6. 만가 (Goronach) D836
7. 밤의 빛(Nachthelle) D 892
8. 밤 (Die Nacht) D983c
9. 세레나데 (Standchen) D 920
10. 물 위의 영혼의 노래(Gesang der Geiser uber den Wassern) D 714
11. 폭풍 속의 신 (Gott imUngewitter) D 985
여름이 끝나간다. 요즘은 아침저녁으로 시원하다. 최근 지인들의 죽음으로 마음이 몹시 우울하다. 하여 몇 해 전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이 음반(그의 설명에 따르면 지친 영혼에 휴식과 청량함을 주는 음악이라 했다.)을 한참 만에 찾았다.
음반을 구입한 뒤 처음 이 음악을 들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도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대체로 화려함은 정갈함과 어울리지 않고 다양함은 심오함과는 반대쪽에 서 있는데 이 음반에서는 화려하면서 동시에 정갈하고 다양하면서 매우 깊은 감흥을 주었다. 훗날 그 지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더니 자신과 같은 감동을 공유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이 밤 음반을 다시 천천히 들으며 그 감상을 옮겨 본다.
전체적으로 11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프랑스 아르모니아 문디 레이블이라 설명서도 내용도 독어 아니면 불어라 음반 전체를 이해하는 데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다만 표지그림이 이 음반이 지향하는 곳을 슬며시 암시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첫 트랙 숲 속의 밤 노래 (Nachtgesang im Walde)는이 음반의 표제에 해당한다. 여러 대의 호른이 연주를 시작하고 있는데 연주를 들으면 제목처럼 문득 독일의 숲, 슈바르츠발트(독일과 스위스 국경 부분의 숲, 흑림)가 떠오른다. 짙은 숲 속의 고요처럼 여리게 시작되는 RIAS-Kammer의 합창단의 음색은 맑고 청아하다.
RIAS-Kammer 합창단은 지난 1948년에 결성된 성가 중심 합창단인데 그동안 많은 음반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성가곡 및 고음악에 뛰어난 분석으로 많은 곡을 지휘한 Marchus Creed가 1996년 재임 시 녹음한 이 음반은 그의 편곡이 슈베르트의 원곡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현대적 재해석으로 정평이나 있다.
호른은 금관악기 중에서 입구를 손으로 막아 연주하는 특이한 형태의 악기로서 단아한 중저음을 낸다. 유장한 호른 음색 위에 ‘오! 밤이여 언제나 나를 반겨주네’라고 합창이 울려 퍼지면 청량한 밤공기를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 포크그룹 시인과 촌장의 ‘숲’이라는 노래의 노랫말 ‘숲에서 나오니 숲이 느껴지네’처럼 내 영혼의 언저리에 숲의 정향이 느껴지는 듯했다.
다음 곡은 무덤과 달이다. 남성 테너부로 시작하는 이 음악의 느낌은 어둡고 쓸쓸하다. 무덤을 비추는 달빛이 밝고 환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고 조용하게 진행되는 것은 음악적 해석의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다음 곡은 곤돌라의 뱃사공이다. 중 ․ 고등학교 음악수업에서 돌림노래로 표현되는 circle canon 형식의 이 음악은 밝고 명랑하며 경쾌하다. 밤의 숲에서 별안간 뱃사공인가 싶겠지만 음반 제작자의 느낌이 이리로 옮아간 것을 우리가 어떻게 따라갈 수 있을까만 아마도 음반 전체의 음악적 균형을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는 피아노 반주가 가볍고 부드럽게 시작되고 여성 합창이 아주 여리게 시작된다. 서양음악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처음은 여리게 시작되는 반면 우리 음악은 처음에 강하게 시작되는 특성을 보이는데 동 ․ 서양의 문화 차이는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이 곡은 종교적 경건함과 함께 조촐한 맛을 풍기는 음악이다. 바흐나 헨델의 힘차고 웅장한 찬송이 아니라 조용하고 소박한 찬송이 이미 근세에 와 있는 슈베르트 당시의 교회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다.
다섯 번째 곡이야 말로 이 음반에서 가장 빼어난 음악이 아닐까 싶다. 괴테의 시에 곡을 붙였는데 괴테의 시는 이러하다.
아침 이슬 머금은 장미와 백합
정원 가득히 피어나고,
(중략)
우리가 사랑의 고통을 느꼈던
그 옛날의 향기,
(하략)
테너 베르너 귀라의 맑은 고음과 힘 있는 남성합창이 배경이 되어 여름의 더위는 물론이려니와 어떤 온도의 변화도 느끼지 못하게 할 만큼의 화려하고 단아한, 그리고 풍성하고 정갈한 화음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역시 여기에서도 circle canon형식이 사용되는데 여름밤, 사람 목소리의 더 없는 맑음과 오선 위의 펼쳐진 충만한 영감과 살아 숨 쉬는 악상의 깊이를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놀라운 음악이다.
다음 곡 ‘만가는 죽은 자를 위한 노래다. 죽은 자를 위한 노래답게 느리다. 하지만 결코 깊고 어두운 슬픔이 아니라 담담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노래한다. 이미 죽은 자에게 슬픔보다는 편안한 사후세계에의 기원이 담긴 산 자들의 기원인 것처럼.
다음 곡 ‘밤의 빛’은 테너 귀라와 나머지 남성 합창단의 대화처럼 들린다. 밤의 빛은 별 혹은 달빛, 아니면 숲 저 멀리서 희미하게 비치는 인가의 불빛 정도일 것이다. 사물의 형태가 사라진 어두운 밤에 비치는 빛은 삶에 있어 등불처럼 요긴하지 않을까! 그 요긴하고 희미한 빛을 남성들의 절제된 음성으로 노래한다.
숲의 정령들과 어둠의 신이 지배하는 밤의 풍경은 불투명, 음모 등일 것이다. 그 밤의 풍경이 다음 곡 ‘밤’에 잘 나타나 있다. 반주 없이 진행되는 합창은 남성들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그 소리는 매우 절제되어 있어 마치 어둠 속에 숨죽인 영혼들의 노래처럼 들린다.
현악기가 쓰이는 ‘물 위의 영혼의 노래는 샤론 앙상블의 예술혼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일반적인 곡보다는 조금 긴 10분 정도의 음악은 음악적 호흡이 짧은 우리에게 조금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지휘자 크리드의 역량에 힘입어 전체적으로 그렇게 지루한 느낌은 덜하지만 곡 전체를 이해하는 데는 몇 번의 반복 청취가 요구된다. 물 위의 영혼이라 함은 무엇을 말함일까? 아마도 살아있는 모든 영혼이야 말로 물 위의 영혼처럼 불완전하고 가벼우며 동시에 어디론가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부호를 음악으로 느끼게 한다.
마지막 곡 ‘폭풍 속의 신’은 격정적이다. 격정은 정제되지 못한 감정이다. 정제되지 않아서 아름다운 것도 있다. 지금까지 억누른 합창단의 감정을 속 시원히 풀어내고 있다. 크리드의 지휘는 파도처럼 넘실거리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1828년 31살의 나이로 요절한 슈베르트가 거의 인생의 후반부에 만든 이 음악들은 1820년부터 죽을 때까지의 작품들이다. 따라서 열정적인 초창기 음악과는 사뭇 다른 느낌들을 준다. 특히 샤론 앙상블과 크리드 리아스 합창단의 음악적 접근은 매우 진지하고 단단하다. 피아노 연주의 완급이나 여리기의 강도는 다른 합창곡처럼 성부를 지배하거나 또는 지배당하지 않는다. 앙상블 전체의 음악 역시 합창 전반에 부드러움과 동시에 진중함을 부여하고 이에 합창은 앙상블의 연주를 타고 조용히 흐르지만 분명한 음악적 견해(지휘자의 견해)를 유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이 가지는 한계는 대중적 지지도의 문제이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없이는 쉽게 이 음반에 끌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하나의 곡은 주옥같지만 들어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여름이 끝나가는 지금, 조용한 밤이 오면 슈베르트의 이 음악을 들으며 삶과 죽음의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고요하고 정갈한 숲으로의 초대에 응하자.
5번째 음악 전체 중의 백미라고 생각되는,
https://www.youtube.com/watch?v=0zFS2dCbZm8
사진은 구글링의 결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