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생각, 그리고

by 김준식

지난주에는 아주 가까운 지인이 세상을 떠났다. 60대 초반인 고인과는 지난 학교에서 바로 옆 자리에 4년이나 동고동락하던 사이였고 학교를 옮기고 나서도 줄 곧 연락을 하며 마음에 내밀한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주고받던 사이였다. 고인의 사인은 간암이었지만 오래전부터 당뇨를 앓았고 그 탓에 이런저런 약재와 가까워지면서 간이 나빠졌고 급기야 암으로 발전하여 고인을 죽음으로 내 몬 것이다.


평소 고인은 자신의 몸에 대해 조금 과하다 싶을 만큼 신경을 썼는데 당뇨를 앓고 있는 상황과 본인의 성격이 겹쳐 이런저런 약재에 과한 욕심이 불행의 원인일지도 모른다. 고인과의 추억은 이제 저장된 것으로 끝이며 더 이상 어떤 진전도 없이 시간에 따라 잊힐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와 고인은 비슷한 부분이 하나도 없는 관계임에도 참 서로를 잘 챙기고 지원한 듯하다. 고인은 외향적이며 직선적이고 선이 굵은 성격이다. 그렇다고 내가 내향적이지는 않지만 직선적인 성격은 아니라 고민도 많고 따라서 쓸데없는 생각도 많다. 성격이 다르다는 것은 오히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 더 오래 인연을 유지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여러 번 이야기 하지만 죽음은 완벽한 끝이며 동시에 그 무엇도 잔류하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은 단절이며 완전한 공백이자 동시에 있어 왔던 모든 것의 소거를 의미한다. 남아있다고 보는 것도 사실은 살아있는 자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따라서 죽음은 완벽한 의미의 소멸이다. 지상에서 죽음이 존재한다는 것은 “반드시 그러하다”라는 명제를 증명하는 거의 유일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민이란 나의 이익에 대한 의도가 관철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매우 단순하고 이기적인 생각의 갈래이다. 제법 합리적인 방향과 목적을 가지는 것이라고 스스로 표방하는 것조차도 하나씩 하나씩 껍질을 벗기고 나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대단히 이기적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오랜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고민의 끝에 오는 것은 허탈함이거나 혹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최근 며칠, 또 이러한 공식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고민을 했고 그 끝은 당연히 고민과는 무관하게 해결되었다.


1649년에 출간된 데카르트의 《정념론》(情念論, Les passions de l'âme)에 따르면 정념이란 여섯 가지, 즉 경이(驚異), 사랑, 미움, 욕망, 기쁨, 슬픔뿐이다. (방법서설/성찰/철학의 원리.. 정념론, R. 데카르트/소두영 옮김, 동서문화사 2016. 506쪽) 그가 풀어놓은 이 여섯 가지 감정에 대한 이야기는 사뭇 흥미진진하지만 현실성은 거의 없는 사변론에 가까운 말들이다.


나의 일상 속에 존재하는 감정을 데카르트의 분류에 의존하여 정리할 수는 없지만, 오늘 하루 나를 스치고 간 감정의 종류는 데카르트의 분류만큼도 되지 않는 것임을 안다. 이를테면 오전과 오후 그리고 밤까지 고작 두어 개의 감정 속에서 뒤척이다 말았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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